Y-Review

[이상은 30주년 특집 #07] 스타일의 탄생

이상은 『공무도하가』
1,525 /
음악 정보
발표시기 1995.07
Volume 6
장르
레이블 폴리도르

이 앨범을 파헤쳐보는 일은 일종의 유혹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는 이 앨범에 등장하는 제재와 풍경이 범상치 않다는 점을 즉각 알아챌 수 있다.

그런 체감이 듣는 이로 하여금 분석하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Bohemian」에 등장하는 티렉스와 흰 국화의 대비, 어머니로 비롯되는 가족 서사, 「Spirng」에 등장하는 ("Red Sea, Blue Sun"로 대표되는) 공감각적 이미지와 가족 서사의 지난한 대립, 「삼도천」에서 태양이 물을 태운다는 역설들 후반부에 페이드아웃으로 처리되는 이국의 전통 민요, 영어 가사로 된 노래나 「새」에서 등장하는 직유, 「22,23,24」에서 세계와 시계와 시간을 연결시키는 기술(記述)에 이르기까지. 모든 소리가 급진적이고도 즉물적이고도 비밀스러우며 복잡다단한 어프로치를 시도한다.

이는 앨범이 의도하는 바이기도 하다. 키보디스트이자 피아니스트였던 타케다 하지무를 새로운 파트너로 맞은 이상은은 자신의 송라이팅을 근본적으로 성찰하게 된다. 그녀는 자신이 만든 음악이 근원적인 것을 다루길 원했고, 그에 필요한 감수성을 갈망했다. 문제는 이러한 작업이 긴 시간을 요구한다는 데에 있었다.

5집 『언젠가는』에서 다시 자기 자신의 내면으로 돌아온 이상은은 자신 안에 있는 모순된 대극을 발견하고 이를 형상화하기 위한 작업에 몰두했다. 그녀는 양 극을 넘나드는 자유로움을 앨범의 중심적인 테마로 삼고 이를 음악적인 이미지로 구현하는 데에 골몰했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3집 『더딘 하루 : Slow Days』에서 들려주듯이 장조와 단조를 넘나들며 드라마틱하게 전개하던 이상은의 멜로디와 결합하여 시너지 효과를 발휘했다. 이상은은 그러한 역량을 한결 선명해진 미학적인 엠블럼들과 결합시키며 자신의 음악을 견고하게 쌓아올렸다. 나의 내면에만 머물던 풍경은 나와 너 사이에 흘러가는 풍광으로 넓어지고(「삼도천」), 너에 대한 갈망은 절대적인 것에 대한 순종과, 비가시(非可視)와 가시(可視), 영원한 것과 유한한 것에 대한 성찰로 심화된다.(「Don't Say That Was Yesterday」, 「Summer Cloud」,「22,23,24」, 「공무도하가」), 이 과정 속에서 한 여성의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가,(「보헤미안」, 「Spring」, 「성에」) 자아의 자유에 대한 성찰(「새」, 「Come, The Children Do」)이 덧입혀진다. 내면의 대극들이 뒤채고 섞이고 흩어지는 광경을 이상은은 자신의 곡 안에 가지런히 수놓는다. 이와 같은 과정에서 앨범 수록곡들의 유장한 흐름을 필연적으로 나올 수 밖에 없다는 듯 전개한다. 놀라운 점은 그게 지극히 타당한 당위성을 획득하고 있다는 점이다.

편곡자인 타케다 하지무와 앨범 프로듀서인 이즈미 와다는 이와 같은 거대한 스케일을 그대로 담아내는 편곡과 세션을 구현하는 것에 집중한다. 어느 한 장르로 묶어 고민할 수 있을 계제가 아니라고 판단한 그들은 프리 재즈와 어덜트 컨템포러리에 잔뼈가 굵은 밴드 세션들을 앨범 작업에 참여시켰다. 그리하여 세션들 거의 전부가 하나 이상의 악기를 다루는 방식으로 이 앨범에 힘을 보태었다. 타케다 하지무 또한 편곡자 뿐만이 아니라 피아노, 신시사이저, 그리고 프로그래밍 (「삼도천」에 등장하는 드럼 파트는 타케다 하지무가 프로그래밍으로 만든 것이다) 까지 도맡아가며 작업에 임했다.

중요한 것은 이토록 다양한 장르와 세션과 악기 편성과 사유와 감각을 동원했음에도, 이상은이 짓고 부른 음악 안에 그 모든 것을 자연스레 귀결시켰다는 점에 있다. 이러한 자연스러움은 이상은의 송라이팅이 전작보다 훨씬 굳건한 모양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다. 2분 내외의 곡들이 대부분이던 전작에 비해서, 이 앨범은 5, 6분 되는 곡도 거침없이 유려한 멜로디를 내뿜는다. 곡 하나하나의 구성 또한 그럴 듯한 당위성을 지니고 있다. 「보헤미안」과 같은 곡에서, 사족으로 느껴질 수 있는 후반부의 멜로디는, 곡의 유장함을 더하는 데 일조한다. 「새」의 복잡다단한 구성의 곡도 「공무도하가」나 「성에」같이 단순한 구조의 곡과 더불어 자연스레 존재한다. 이상은의 송라이팅이 이 앨범에 이르러 안정 궤도에 올라갔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시사하는 것이리라.

흥미로운 점은 이 앨범이 소위 '정박(正拍)의 세계', (‘확실’이 아니라) '맺고 끊음이 정확한 세계'와도 거리가 비교적 멀다는 데에 있다. 「삼도천」의 인트로는 보컬의 등장에 뒤늦게 비트를 도입한다. 때로는 다음 멜로디에 앞서서 보컬이 들어가기도 한다. 「Spring」의 행진곡 풍의 드럼이 페이드아웃 되는 동안, 「Come, The Children Do」의 인트로를 차지하는 앰비언트 비트가 페이드인하는 게 잠시나마 겹쳐 들린다. (이는 리마스터링을 한 앨범에서도 마찬가지로 들을 수 있다.) 얼핏 즉흥적으로 보이는 이러한 제스처는 경직된 앨범의 구성에 한결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앨범 곳곳에 드러내면서, 전체가 거대한 흐름을 띠는 데 기여하고 있다.

이상은의 보컬은 어떤가. 「September Rain Song」에서 미묘하게 달라지는 톤, 「Don't Say That Was Yesterday」의 후반주, 「Summer Clouds」의 후반부에서 스캣을 부르는 대목, 저음을 중점적으로 낮추어 저승의 하강 이미지를 표현한 「삼도천」과 고음을 중심으로 잡아 새가 날아가는 하늘의 자유로움을 묘파한 「새」의 보컬, 「22, 23, 24」의 중반부에서 강렬한 피아노의 타건에 맞추어 있는 힘껏 목소리를 드높여 '절대적인 존재'를 강조하는 대목.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이 앨범에서 이상은은 자신의 곡을 완벽하게 장악한다.

적어도 그 때까지 나온 국내 앨범들 중에서, 이렇게까지 한 아티스트의 비전(vision)을 철두철미하게 이행한 앨범은 없었다. 어찌나 철저하게 이행했는지 일견 강박적인 성격마저 느껴질 정도이지만, 그런 점이 단점으로 부각되지 않는 선에서 끝났다. 그러나 당대의 사람들은 이러한 이상은의 모습에 당혹스러워했다. 그 옛날의 ‘아이돌’을 기억하는 대중들은 아티스트가 되어 돌아온 이상은을 환영해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앨범에 열광한 ‘소수의 행복한 청자들’ 덕분에 앨범은 오늘날에 이르러 정반대의 위상을 얻었다. 

이러한 재평가는 현재 시점에서 생각해보아도 지극히 타당하다. 90년대를 화려하게 수놓던 하이브리드의 범람 속에서 이 앨범은 서태지와아이들, 유앤미블루, 장필순, 델리스파이스, 어어부밴드, 패닉의 앨범과 더불어 오늘날까지 오롯하게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케이스인 것이다. 특히나 저렇게 살아남은 앨범들 중에서 이상은과 비슷한 방식으로 살아남은 앨범들은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는 그녀 스스로가 자신의 내면세계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90년대의 음악가들은 억눌린 개인의 소우주을 발견했다. 그들은 때로는 절규하고, 때로는 침잠하며, 때로는 한없는 가벼움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이며, 지난 시대의 음악을 하나 둘 해체해나가는 데에 골몰했다. 이상은은 그러한 흐름 속에서 자신 안에 깃든 세계(혹은 상처)에 대해 성찰했다. 「Spring」의 마지막 대목인 "Only dream can be my inner faces/ if god allows to be (오직 꿈만이 나의 내면이 될 수 있어/ 만약 신이 허락한다면.)"에서 우리는 외부의 세계를 내면화한 송라이터의 심연을 읽을 수 있다.

마지막 곡인 「무엇으로 다시 태어나든」은 사실상 연주곡이다. (CD의 트랙리스트에는 「Reincarnation : 환생」이라 씌어 있다.) 음원 사이트에서 찾아볼 수 있는 「무엇으로 다시 태어나든」이라는 제목은 부클릿에 쓰인 가사의 제목에서 따온 것이다. 그러나, 이상은은 여기에 실린 한글 가사로 노래하지 않았다. (9집에 이르러서야 우리는 이 곡의 영어 가사 보컬 버전을 들을 수 있을 따름이었다.) 아코디언이 보컬을 대신하여 멜로디를 연주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다만 이 멜로디를 통해 이상은의 가사가 어떻게 곡에 녹아드는지 상상할 수 있다. 다음 생은 알 수가 없다는 이상은 특유의 은유일까. 아니면 화합될 수 없는 간극에 대한 특유의 제스처일까. 알 수 없다. 그저 하나의 통합에 폭력적으로 귀결되지 않고, 끊임없이 대비를 강조하는 공간만이 계속 떠오른다. 참으로 독특한 마무리지 않은가.

누군가는 이 앨범을 과잉되고 느리고 이상하다고 말할 것이며, 누군가는 이 앨범에서 뿜어져 나오는 원색적인 상상력과 스케일에 끊임없는 칭송을 보낼 것이다. 누군가는 이 앨범이 과대평가 되었다고 말할 것이며 누군가는 이 앨범이 더 말할 게 남아있다는 점을 설파할 것이다. 우리는 늘 그 사이로 이 앨범을 놓치고 있다. 결국 수많은 말과 수많은 해석이 오갈 것이라는 예감에 수없이 떨며 공감할 우리들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앨범은 그렇게 우리들을 남겨놓은 채, 수많은 삶의 표정들을 비추며 유유히 지나갈 것이다. 
 

Credit

[Musician]
Acoustic & Electric Guitar : 도쿠타케 히로후미 (徳武弘文)
Bass : 미즈쿠키 치하루 (美久月千晴)
Drum : 시마무라 에이지(島村英二)
Percussion : 카케하시 이쿠오(梯郁夫)
Piano : 타케다 하지무 (竹田元)
Keyboard : 타케다 하지무 (竹田元)
Accordion : 타케다 하지무 (竹田元)
Panpipes : 아사히 타카시 (旭孝)
Japanese Flute : 아사히 타카시 (旭孝)
Recorder : 야마모토 타쿠오 (山本拓夫)
Chorus : 이상은

[Staff]
Producing & Directing : 와다 이즈미 (和田泉)
Recording & Mixing Engineer : 오키츠 토오루 (沖津徹) @Wonder Station Studio
Assistant Engineer : 야마다 토모노리 (山田有则), 타니구치 아야토 (谷口文) @Wonder Station Studio, 나가야마 유이치 (永山雄一) @Sound Dali Studio, 마츠야마 카오루 (松山薫) @On Air Studio
Recording Studio : Wonder Station Studio, Sound Dali Studio, ON AIR Azabu Studio, L&T Studio, 900 Studio(Broadway)
Mastering : 이가라시 테루카키 (五十嵐輝明)
Mastering Studio : mix DMR A

[Additional Staff]
Remastering : 와다 이즈미(和田泉)
Remastering Studio : Studio Kadena@Okinawa

Track List

  • No
    곡명
    작사
    작곡
    편곡
  • 1
    보헤미안
    이상은
    이상은
    타케다 하지무
  • 2
    Don't Say That Was Yesterday
    이상은
    이상은
    타케다 하지무
  • 3
    Summer Clouds
    이상은
    이상은
    타케다 하지무
  • 4
    공무도하가
    이상은
    이상은
    타케다 하지무
  • 5
    삼도천
    이상은
    이상은
    타케다 하지무
  • 6
    22, 23, 24
    이상은
    이상은
    타케다 하지무
  • 7
    Spring
    이상은
    이상은
    타케다 하지무
  • 8
    Come, The Children Do
    이상은
    이상은
    타케다 하지무
  • 9
    성에
    이상은
    이상은
    타케다 하지무
  • 10
    이상은
    이상은
    타케다 하지무
  • 11
    September Rain Song
    이상은
    이상은
    타케다 하지무
  • 12
    무엇으로 다시 태어나든 (inst.)
    이상은
    이상은
    타케다 하지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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