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dless Lay」의 인트로는 지금 들어도 낯설다. (어느 정도 공간감을 살린) 나일론 기타의 연주를 신시사이저가 가만히 짓누르는 시작은 말 그래도 표백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비트가 이상은의 목소리와 섞여 연주되는 과정 또한 그러하다. 일렉트릭 기타 또한 일정한 템포와 하나의 음으로만 이어진다. 민요의 반복성을 차용한 듯 한 멜로디는 관습적인 훅을 만들어낸다.

뒤이어 이어지는 곡들 또한 그렇다. 「Green Tea Party」는 둔탁한 어프로치의 전자 드럼과 날카로운 멜로디의 기타를 베이스가 겨우 잡는다. 어쿠스틱 편곡에 의존한 「오늘 하루」나, 「삶」, 「어린 날」과 같은 한글 가사로 된 곡도 마찬가지다. 이상은의 멜로디는 이제 반복과 반복의 변주 사이를 끊임없이 오간다. 낙차가 큰 감정도, 다이나믹한 구성도, 끊임없이 다른 측면이 끼어드는 멜로디도 이 앨범에는 없다. 그나마 「Summer」나, 「Get Over It」, 「Time Fies」같은 곡들이 전작의 리채를 드문드문 상기시켜 줄 뿐.

이러한 전환은 뜻밖이었다. 자신이 20대의 열정을 재탕하는 작가가 아니라는 점은 분명히 했지만, 그 대신 너무 많은 것을 잃은 게 아닌가. 발매 당시의 평론가들은 입을 모아 그렇게 이야기했다. 일상적 감각을 기초로 한 관조적 태도, 오리엔탈리즘과 영원(신)에 대한 구도적 제스처, 잠언적 어조. 갈망과 내면의 상징화가 아닌 관조의 대상이 된 제재. 평론가들은 이 앨범에 대해 말을 아꼈다. 이 앨범을 기점으로 이상은의 음악이 부담스러워졌다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그들의 지적에 수긍하는 대목도 있다. 이 앨범 특유의 반복성과 장르에 대한 천착은 이전의 다이나믹함에 비해 너무 밋밋했다. 사뭇 편안한 자세로 노래했지만, 그러한 밋밋함으로 인해 가사에 숨은 관념들이 더욱 무거워진 것이다. 예민한 평론자들은 이 앨범에 살짝살짝 들어간 ‘힘’을 눈치챘고, 이는 앨범 전체가 버성기는 결과를 낳았다. 그래서 나긋하게 부를수록 무거워지고, 편안해질 수록 부담스러워졌다. 평론가들이 눈치챈 것은 바로 이러한 지점들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이견의 여지는 없다. 리채는 이 앨범에서 자신의 한계를 드러내고 만다.

그러나 이 앨범은 이상은의 완전한 실패만을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 시점에서, 이 앨범은 또 다른 터닝 포인트라는 게 내 생각이다. 다음 작품들에 이어지는 일상적 어조, 관조적인 시선은 외려 이 앨범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 앨범의 애매한 위치는 시간이 지나면서 '과도기'라는 당위성이 덧씌워진 것이다. ‘지금의 이상은’에게 이 앨범은 꽤 중요한 '시도'였던 것이다.

훗날 이어지는 앨범들의 반짝거림은 죄다 이 앨범의 어정쩡함에 일정부분 빚지고 있다. 비록 시도의 차원에서 끝나기는 했지만, 어쨌든 이상은은 이 앨범을 끝으로 자신이 만든 집을 떠나는데 성공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자신의 음악은 자신이 만드는 것이라는 믿음만큼은 이 앨범에서도 여전히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뒤이어 이어지는 작품들이 없었다면, 이와 같은 평가도 없었을 것이다.)

리채의 여정은 여기서 일단 막을 내리지만, 이상은의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여정은 계속된다.
 

#이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