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Review

‘자유’라는 이름의 반응

최성호특이점 (Choi Sung Ho’s Singularity) 『The Perioidic Table』
1,074 /
음악 정보
발표시기 2019.07
Volume 4
장르 재즈
레이블 스튜디오877
유통사 미러볼뮤직
공식사이트 [Click]
이 앨범은 ‘말’을 다룬다. 언어가 아니다. 언어는 문자 언어와 음성 언어를 모두 포함한 개념이다. 앨범은 어디까지나 음성 언어에서 주요 모티브를 얻는다.

「정이라도 든 걸까」를 보자. 앨범의 속지에는 이 곡에 대한 제법 긴 '글'(가사가 아니라)이 있다. 그러나 음악 속에서 목소리로 등장하는 것은 볼드체로 처리된 말들 뿐이다. 그마저도 어법에 많지 않고, 툭툭 끊기고, 때로는 늘어진다. 속지의 글과 구현된 말로는 개인 심리의 기저와 디테일을 면밀히 파악하기 어렵다. 추상적이고 간접적이며 은밀하다. 그마저도 곡의 후반부는 아예 음악뿐이다. 글에서 영향을 얻은 트리오의 앙상블만이 차근차근 음을 구성할 뿐이다. 속지에 적힌 후반부의 글들은 끝끝내 음악 안에 들어오지 않는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첫째, 이 앨범의 모티브는 말, 즉 음성 언어에 있다는 것. 둘째, 이 앨범의 말이 주제를 구체적으로 지시하지 않는 '일상의 말'에서 비롯되었다는 것. 하지만, 이 앨범의 말은 일상의 말과도 완벽하게 들어맞지 않는다. 개인적인 디테일도 공적인 언어 규범에도 완벽하게 속하지 않는다. 앨범의 말은 일상에서 나왔지만, 일상으로 온전히 환원할 수 없다. 

이 앨범의 말은 (인과관계가 아니라, 연관관계를 엮는) 세미콜론처럼, 재즈 화음, 스윙감, 각종 노이즈, 음장력, 리듬을 엮거나 충돌시킨다.「형광등을 끄자 달빛이 켜지네」를 보자 "형광등을 끄자"라고 한 글자씩 또박또박 외치는 최성호의 목소리에 (언어가 되지 못한 구음에 더욱 어지럽고) 혼란스러웠던 전반부의 세션이 끝난다. 곧이어 후반부의 나조곤한 세션이 '달빛이, 켜지네'라고 말하는 최성호의 목소리에서 시작한다. 말이 서로 어울리지 않은 것 같던 대목들을 연결 시켜준다. 연관관계의 자유로운 연결이 두드러지는 대목이다. 「나 지금 침착하다」는 또 어떤가. 혼란스러운 연주와 스윙감 넘치는 연주를 이펙터가 걸린 기타 화음의 떨림이 이어주는 구조가 “나, 지금, 침착하다”라는 말에 갑자기 끝맺는다. 연관관계의 자유로운 분리가 음악에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개인적인 어투를 살리며 말하는 최성호의 목소리는 분리 관계에서 자칫 불거질지도 모르는 작위성을 최대한 낮춘다. 

최성호의 기타 또한 말과 더불어 다양한 주법과 톤으로 말이 생기다 사라지는 순간들을 재치있게 마감한다. 때로는 시치미 뚝 떼며 멀거니 따듯한 톤을 불어넣기도 하고, 때로는 충돌과 버성기는 말들의 뉘앙스를 더욱 극대화시키며 충돌의 임팩트를 한층 돋궈준다. 자신의 포지셔닝을 결코 고정된 자리에 놓지 않는다.  삼인조로 재편성된 세션은 이러한 고정된 자리를 거부하며 말을 둘러싼 모험에 나선다. 때로는 흉내내고(「주기율표」에서 원소기호를 말할 때가 특히 그렇다.) 때로는 말이 끝나는 이후에 흔들리는 지표를 가만히 추적하며(「어떤 기억」이나, 「형광등을 끄자 달빛이 켜지네」의 후반부가 그렇다.) 때로는 말로 끝나기 앞서서 혼란스러운 상황과 엇갈림 속에 겹쳐지는 광경을 고스란히 그려낸다.(「나 지금 침착하다」) 말(言)로 인한 상황에 천착하다가 어느 순간 벗어나 무가 되는 과정을 온전하게 바라보기도 한다.(「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앨범은 말(言)과 음악이 맞닿은 공간 속에, 알알히 박혀있는(혹은 떨어져 보이는) 스윙 리듬과, 재즈 화성 파트들을 절묘하게 잇는다.

드럼을 담당한 백선열은 때로는 정박으로, 때로는 싱코페이션 리듬으로 때로는 난타로, 때로는 에코가 들어간 심벌즈 터치만으로, 복잡다단하게 이어지는 리듬 구조를 무람없이 이어간다. (「나 지금 침착하다」에서 신경질적으로 오가는 리듬 구조는 그가 아니었던들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을 것이다.) 베이스에 참여한 김도영은 베이스 현 자체의 음장감보다 악기 주변에서 벌어지는 현장감을 십분 살리는 주법을 통해 말의 현장감, 형국이 뒤채다 정리되는 과정에 음악적인 설득력을 보태준다. (「투명인간」의 초반부를 유심히 들을 때마다 이런 생각이 확신을 얻는다.) 각자 따로 녹음한 파트들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선명했다. 덕분에, 너무나 미세해서 쉽게 지나칠 수 있는 반응도 온전히 제 의도를 가지고 음악에 참여할 수 있었다. 만약 이 녹음이 원 테이크로 갔다면 앨범 특유의 톡톡 튀는 미감과 자유로운 화학 반응들은 한층 살지 못했을 것이다.

골몰하며 깊이의 층을 탐구하던 전작들과 다르게,『주기율표』는 말(言)의 주변, 말(言)의 중심, 말(言)의 시작과 끝을 고스란히 재즈 속에 녹여내려 한다. 앨범의 무게중심은 어디까지나 재즈 트리오의 ‘연주’에 있지만, 연주는 말이 머무는 자리를 입체적으로 관찰한다. 재즈적인 순간들을 만들다 흩어놓고 다시 재구축하려 애쓰는 가운데서도 말의 뉘앙스가 지니는 온도를 그대로 꺼내 펼치려고 한다. 이 앨범의 장점은 이 과정에 지나치게 천착하지 않아도 즐겁게 들을 수 있다는 점이다. 앨범은 어디까지나 말과 음악이 만나서 일으키는 반응의 처음과 중간과 끝을 지켜보고는 데 집중하기 때문이다. 다른 의미는 들어있지 않고, 다른 골몰을 숨기지도 않는다. 그래서인지, 이 앨범 특유의 추상적인 (말의)메시지는 앨범의 치밀함에 질식하지 않기 위한 일종의 숨구멍으로 활약한다. 앨범은 치밀하지만, 부담이 적고, 제멋대로지만, 깔끔하며 심지어 화사(!)하기까지 하다.

이 앨범의 성과는 재즈의 어법을 한국어의 어법(에서 얻은 모티브)과 엮어 새롭게 창안했다는 표현만으로 부족하다. 누군가는 아수라로, 누군가는 무너짐으로, 누군가는 지옥으로 보는 용광로 속에서 이런 식의 직시와 관조를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결국 예술의 언어, 예술적인 관점, 예술적인 인간의 몫이라는 점을 이 앨범은 역설한다. 이 앨범은 그 메시지를 예리하다 못해 날이 시퍼렇게 서 있는 통제와 조절로 말한다. 마냥 이상적이지도, 마냥 현실적이지도 않은 자유로운 화술로 그들은 음악이 지니는 조율의 힘을 설파한다. 그 과정에서 튀어나오는 자유라는 화학 반응은 이 앨범이 어떤 도덕적인 잣대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최성호 특이점은 늘 자신의 자리에서 확실하게 뿌리박으며 무수히 많은 변모를 거듭했다. 이 앨범은 그런 변모 속에서 자신만의 포지셔닝을 유지하는 데 성공한 또 하나의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재즈의 즉흥성과 당김음의 당위성으로 혼란스러운 지금을 멋드러지게 직조 해내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폼은 일시적이지만 클래스는 영원하다고 했던가. 너무 생생한 나머지 꿈에서 불뚝불뚝 튀어나올 것만 같아서 두렵다.  

 

Track List

  • No
    곡명
    작사
    작곡
    편곡
  • 1
    어떤 기억
    최성호
    최성호
    -
  • 2
    주기율표
    최성호
    최성호
    -
  • 3
    형광등을 끄자 달빛이 켜지네
    최성호
    최성호
    -
  • 4
    정이라도 든 걸까
    최성호
    최성호
    -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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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성호
    최성호
    -
  • 6
    나 지금 침착하다
    최성호
    최성호
    -
  • 7
    투명인간
    -
    최성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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