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Review

조각과 조각 사이를 누비는 서늘함

플라스틱피플 (Plastic People) 『Songbags Of The Plastic People』
854 /
음악 정보
발표시기 2003.05
Volume 1
장르 포크
레이블 카바레
유통사 드림비트
플라스틱 피플의 첫 앨범을 다시 꺼낸다. 나온 지 17년 된 앨범이라는 사실에 한 번 놀라고, 그 내용물에 두 번 놀란다. 무엇보다 이 앨범에 대한 비평적인 논의가 제대로 업데이트 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세 번 놀란다. 세 번째 놀랐을 때 조금 슬펐다.

기억은 그만큼 불공평하다. 물론 나는 그들의 성취를 추억으로 포장할 생각은 없다. 과거의 평가와 오늘날의 평가는 다를 수밖에 없다. 과거의 훌륭한 앨범들도 시간 앞에서 빛을 바랄 때가 있다. 과거의 졸작도 시간과 싸우면서 이길 때가 있다. 좋은 앨범은 결국 어떻게든 예술로 생존한다. 나쁜 앨범은 끝내 당대를 추억하는 참고용 보고서로 쓰인다. 이 앨범은 어떤 경우일까? 17년이라는 시간을 잘 버텨냈을까? 나는 앨범을 지금 여기에 놓고 생각을 거듭했다.

예나 지금이나 이 앨범은 소박하기 그지없다. 당대의 복고를 표방한 「뭐라 하기 어려운 커피맛」의 색소폰 음색은 지금의 청자라면 어떻게 받아들일까. 「고양이」의 공간감을 지금의 청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을까. 「책에서 발견한 그녀」를 감싸는 퍼즈톤 기타의 거친 맛에 행여나 고역을 느끼지나 않을까. 「야행」에 나오는 트레몰로 이펙터를 먹인 기타톤은 어떻게 들릴까. 김민규의 가사가 유달리 툭툭 끊기는 것에 대해 청자들은 생경함을 느끼지 않을까? 예전의 청자들이 잘 들었다고 오늘날의 청자들까지 잘 들을 것이라 확신할 수 없다. 싫으나 좋으나 감수성은 시간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우리의 감수성은 이미 이 앨범을 감상하기에 너무 예민해지지 않았을까. 불안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이 앨범은 빛이 바랜 것일까?

아니다. 앨범은 여전히 제 빛을 발한다. 지금 이 맘 때에 거듭해서 들어도 마찬가지다. 앨범은 시간을 견뎌냈다. 그 이후 발표된 어쿠스틱 팝 앨범들에 견주어도 마찬가지다. 『Songbags Of The Plastic People』은 뒤에 그들이 발표한 앨범들보다 적어도 반걸음 앞서 있다. 다만 그 이유를 금새 파악할 수 없었을 따름이다. 사람들은 좋아할 이유도 없는데 그것에 당황하며 거부반응을 보이고, 싫어할 이유를 만들어내면서까지 필사적으로 저항하려 애쓴다. 나는 꼰대마냥 그 점을 탓하며 구시렁대고 싶지 않다. 자연스러운 반응이기 때문이다.

그 대신 이 앨범을 좀 더 주의 깊게 순서대로 듣기를 권한다. 이 앨범은 단순한 팝 이상의 것을 보여준다. 「야행」을 듣고 난 뒤에 느껴지는 차분함이 「뭐라 하기 어려운 커피맛」을 안락하게 만드는지, 「마법의 정원」이 들려주는 나른하고 감상적인 무드가 「오후 3시」의 일상성에 어떤 맥락을 부여하는지, 「고양이」의 안정감을 「빗노래」가 어떤 식으로 유쾌하게 깨트리는지를 안다면, 이 앨범이 달리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나머지 수록곡들 또한 마찬가지다. 앨범은 자신만의 무드에 일관성을 갖추며 적절하게 이끌어나간다. 생각보다 무척 다양한 감정을 소화하고 있음에도 무리 없이 받아들이고 즐긴다. 허물없이 대하지만, 결코 소홀히 대하지 않는다.

세션 또한 수록곡들 특유의 유연성에 몸을 맡긴다. 드럼은 프로그래밍으로 대체되거나, 아니면 간단한 드럼 키트로 대신할 수 있다. 「야행」이나 「뭐라 하기 어려운 커피맛」에서는 객원 뮤지션들도 초대해서 협연을 들려준다. 베이스 또한 일렉트릭 베이스와 어쿠스틱 베이스를 번갈아가며 연주할 수도 있다. 앨범의 수록곡들이 이런 구조의 세션을 허락할만큼 스스럼없었다는 게 제일 큰 이유다. 이 앨범이 좀 더 각 잡은 2집 『Folk, Ya!』(2006)와 생각을 더한 3집 『Snap』(2009) 보다 더욱 자연스레 다가온 것은 수록곡에 접근하는 방식이 다른 앨범들과 달리 훨씬 유연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도 편안히 들을 수 있다. 다소 장르에 기대는 「모자」의 다음으로 「대지의 시간」이 흘러나오더라도 여전히 등을 기대며 들을 수 있다. 그저 이렇게도 전환할 수 있구나 하면서 맥주 한 캔을 냉장고에서 꺼내 천천히 마실 수 있다. 앨범을 각 잡고 듣는 나 같은 사람이나, 헐겁게 듣는 사람이나 동일하게 같은 마음을 가져갈 것만 같다. 이 앨범이 말하는 바는 우리도 한 번 쯤은 겪어본 감정이기 때문이다. 

이 앨범은 꿈을 산산히 깨진 조각들로 말한다. 조각과 조각 사이를 누비는 서늘함이 되려 꿈이 없는 자리를 더욱 황량하게 만든다. 낭만적인 어조는 뒤이어 이어지는 서늘함을 겸비하고, 그러다 다음 꿈을 호명한다. 바로 이런 구조 덕분에 이 앨범은 별다른 때를 타지 않는다. 꿈을 꾸기 위해서는 어두워져야 한다는 점을 플라스틱피플은 잘 알고 있다. 꿈을 위해 밤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밤이 되어야 우리는 꿈을 꿀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래서 누군가는 지독히도 좋아하고 누군가는 지독히도 싫어할 것이다. 당연한 반응이다. 그래도 이 앨범을 듣는 편이 안 듣는 편보다는 낫다는 게 내 생각이다.

좋은 음반이란 게 본디 그렇다. 일단 지나가면 어쩔 수 없다. 배척하든 껴안든 본인의 자유다. 나는 더 강요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히 말한다. 이 앨범은 이 앨범이 받아야할 관심을 여전히 덜 받고 있다.
 
 

Credit

[Member]
김민규, 윤주미

[Musician]
Vocal : 김민규 (Track2,3,4,6,7,8,9,10,11,12), 윤주미 (Track 3,5,8,12,13,14)
Acoustic Guitar : 김민규
Electric Guitar : 김민규
Drum : 윤주미 (Track2,5,8,13,14), 강대희 (Track3)
Chorus : 윤주미 (Track2,4,7,8,9,10,11), 도은호 (Track7,13), 김민규 (Track13,14)
Electric Bass : 도은호 (Track2,4,5,6,10,13,14)
Acoustic Bass : 도은호 (Track3,7,8,9,11,12)
Saxophone : 이성배 (Track3)
Keyboard : 김민규 (Track4,7,9,10,11), 윤주미 (Track12)
Drum Programming : 김민규 (Track4,6,9), 윤주미 (Track9,10)
E-bow : 김민규 (Track6)
Tambourine : 윤주미 (Track7)
Cowbell : 윤주미 (Track8)
Drum Sampling : 김민규 (Track12)
[Staff]
Recorded & Mixed by 이성문
Mastered by 박호진@런던브릿지스튜디오

Track List

  • No
    곡명
    작사
    작곡
    편곡
  • 1
    여우사냥 (inst.)
    -
    플라스틱피플
    플라스틱피플
  • 2
    야행
    플라스틱피플
    플라스틱피플
    플라스틱피플
  • 3
    뭐라 하기 어려운 커피맛
    플라스틱피플
    플라스틱피플
    플라스틱피플
  • 4
    책에서 발견한 그녀
    플라스틱피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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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
    마법의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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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
    오후 3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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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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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
    빗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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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
    메리고라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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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
    She Sa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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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
    전래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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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2
    Waltz For Tom
    플라스틱피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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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
    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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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
    대지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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