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의 아우라는 멤버 개개인의 합보다 훨씬 강렬하다. 1991년 Mick Harris가 밴드를 탈퇴하면서, Napalm Death(이하 ND)는 1집부터 활동한 멤버가 단 한 명도 남지 않은 상태에 이르렀다. 흥미롭게도 드럼 키트에 새롭게 앉게 된 Danny Herrera 이후로 ND에는 더 이상의 멤버 교체가 일어나지 않았다. 이때 확정된 라인업 - Mark "Barney" Greenway(보컬), Mitch Harris(기타), Shane Embury(베이스), Danny Herrera - 부터 ND는 상업적인 성공도 조금씩 맛보기 시작했다.

이후 ND가 펼쳐낸 음악적 성장은 Lee Dorian (현 Cathedral)과 Bill Steer (현 Carcass), Mick Harris가 재적하던 시절의 『Scum』(1987)과 『From Enslavement to Obliteration』(1988)의 성취에 기초하고 있다. 지금의 ND 음악만 봐서는 1980년대의 ND와 전혀 다른 스타일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과거를 지우면 현재의 스타일은 절대 성립되지 않는다. 멤버 교체는 음악 스타일 일부에 영향을 끼쳤을지언정 ND라는 그라인드 코어 밴드 전반을 바꾸진 못했다. 나는 한 밴드의 아우라가 특정 멤버의 개인기에 너무 기운 나머지 그 멤버가 빠지면 더 이상 같은 밴드라고 말하기 힘든 경우보다, 이렇게 밴드의 합을 통해 형성된 아우라가 개인을 초월하는 경우야말로 진정한 '록 밴드의 모습'이라 믿는 편이다. 그런 측면에서 ND는 록의 역사에 또 하나의 아우라 넘치는 족적을 남긴 장인들이라 해도 무방하다. 결성부터 따지면 어느새 35년의 시간을 흘렀다.

16번째 스튜디오 앨범인 『Apex Predator - Easy Meat』은 ND가 걸어온 성취를 한 단계 더 높이 올려놓았다. 1990년대를 함께 일군 프로듀서 Colin Richardson 이후 밴드가 선택한 파트너인 프로듀서 Russ Russell은 이번 작품에서도 손발을 맞추고 있다. 『Enemy of the Music Business』(2000)부터 함께했으니, 이제 Russ는 제 5의 멤버라 봐도 무방할 정도로 ND와 찰떡 호흡을 자랑한다. 그래서 뻔한 작품이 나왔을 것이라 어림짐작한다면 크게 헛다리짚은 거라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다. 1980년대의 혈기가 부럽지 않았던 『Utilitarian』(2012)을 넘어 이번에는 ND 다음 세대의 익스트림 메탈인 블랙/바이킹 메탈까지 소화하고 있다. 행여나 ‘Nazi Punk Fuck Off’를 원래 자기 옷이었던 듯 완벽하게 커버하던 신념의 ND가 변절이라도 했나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완전히 그라인드 코어 판 Pink Floyd다. Pink Floyd가 근대적 학교 시스템의 획일적 교육을 소시지 만들기에 비유했다면, ND는 『Apex Predator - Easy Meat』를 통해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노동자를 온전한 인간이 아니라 내장과 뇌와 살코기로 해체된 존재라고 말한다. 즉, 자신이 뭐 하는지도 모른 채 새로운 고깃덩어리를 생산하다가 자신도 죽어서 다시 그 고깃덩어리로 해체되고 있다 말한다. 심지어 그 노동자는 자신이 한 노동의 결과물(고깃덩어리)에조차 끝내 다가가지 못한 채, 뇌와 내장이라는 부산물만 겨우 얻어먹으며 삶을 연명한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완벽한 노동 소외를 극단의 풍자로 그려내고 있다. 바이킹 메탈적 요소는 이 시대의 망령처럼 돌아다니는 ‘합리성’과 ‘성공신화’ 담론을 풍자하기 위해 사용된다. 뮤직비디오로 선공개된 「Smash a Single Digit」은 이 지독한 현실을 간단한 애니메이션으로 섬뜩하게 표현되고 있다.

수록곡 전체가 뮤직비디오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기나긴 인트로(무려 3분 46초) 격인 「Apex Predator – Easy Meat」를 지나 「Smash a Single Digit」로 폭발하기 시작한 앨범은 마지막 곡 「Hierarchies」까지 31분간 사운드의 극한으로 청자를 밀어붙인다. 그 안에서 노동 계급은 왜 영원히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는가, 경찰의 곤봉 앞에서 언제나 머리가 터지게 저항하는데 어째서 현실은 한 번도 바뀌지 않느냐고 끊임없이 묻고 있다. 우리 시대 노동의 현실과 구조적 모순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셈이다. 단 한 순간도 예외는 없다. 정부의, 대기업의, 자본의 개가 된 언론의 언사를 바이킹 메탈식의 허풍스런 사운드로 담아낸다면, 여기에 분노하고 저항하는 ND의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 벼려진 그라인드 코어 사운드로 표현된다. 여기엔 민족주의, 원리주의, 우파적 성향의 바이킹 메탈을 바라보는 ND의 날 선 시선도 반영되어 있다.

"Barney" Greenway는 자신의 성대를 있는 대로 쥐어짜며 이러한 밴드의 생각을 얼얼한 울림으로 전달하고, 백 보컬을 맡은 Mitch Harris는 송곳 같은 스크리밍 코러스로 이 메시지를 강화한다. ND가 바이킹 메탈을 시도했다는 식의 어설픈 감상기들을 읽고 ND도 북유럽의 바이킹 메탈 밴드들이 빠져있는 '날조와 창조된 전통' 속에서 세상을 눈을 닫은 채 딸딸이나 치고 있는 음악으로 변절했다고 생각했던 이라면 반드시 각 잡고 앨범을 정청할 필요가 있다. 이 앨범은 2015년 신자유주의와 글로벌 자본주의만이 우리의 살 길이라 믿는(혹은 세뇌된) 이들에 대한 그라인드 코어식 경고, “니가 서 있는 현실을 똑바로 직시하라!”는 일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