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Zine

블랙홀 #1 : 블랙홀에게 정규 음반이란 어떤 의미인가

786 /
음악 정보

14년만의 정규앨범 『Evolution』으로 돌아온 헤비메탈 밴드 블랙홀을 만났다. 이번 앨범은 음반 데뷔 30주년에 발매되었다는 의미도 있다. 한국 헤비메탈 밴드 최초로 후배들이 제작한 헌정음반 『Re-Encounter The Miracle』을 선사받은 밴드이기도 한 블랙홀과 새 앨범부터 과거의 추억, 미래의 얘기까지 나누었다.


○ 인터뷰이 : 블랙홀 - 주상균(보컬/기타), 정병희(베이스), 이원재(기타)
○ 인터뷰어 : 조일동 (음악취향Y)
○ 일시/장소 : 2019년 9월 9일, 방이동 올림픽공원 내 모처
○ 녹취 : 조일동 (음악취향Y)


 

“우리 멤버들끼리 '하자'고 하면, 있어도 하고 없어도 하는 거다.”
 

조일동 (이하 '조') : 반갑다. 오랜만에 뵙는다.

 

이원재 (이하 '이') : 블랙홀 헌정음반 만드느라 조일동 편집장이 고생이 많았다. 고맙다.

 

: 널리 홍보 좀 부탁드린다. (웃음)

 

주상균 (이하 '주') : 이번 『Re-Encounter The Miracle』은 전부 다 잘 된 거 같다. 녹음도 엄청 잘 되었고, 퀄리티도 높다.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꿀릴 게 없는 작품이란 생각이다.

 

: 믹싱 파일을 하나씩 받을 때마다 참가 밴드 모두가 정말 칼을 갈아가며 녹음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 그래서 홈페이지나 음원 사이트 뒤져서 이번 작업에 참가한 후배들의 음악을 다 들어봤다. 너무 고마운 게 자신들의 음악 이상으로 너무 정성을 들여 만들었다는 거다.

 

: 지금 여기 참가한 후배들이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상도 받아본 경험이 있을 정도로 음악성도 있고, 이쪽 음악 씬에서는 정말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팀이지 않나? 나름대로 팬덤도 가진 팀들이고. 이런 팀들이 모이게 되면서 서로 보이지 않는 경쟁이 있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정병희 (이하 '정') : 참가한 밴드들도 서로 경쟁하는 마음도 있고, 각자 서로의 연주를 들으며 자극도 받고, 그러면서 실력도 늘었을 거다.

 

: 정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을 거다. 창작곡으로 참여하는 앨범이 아니라 이미 블랙홀의 기성곡을 두고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편곡의 대결이랄까, 정말 신경 많이 쓴 게 느껴진다.

 

: 향 후 몇 년간 이번 참가 곡에서 시도했던 편곡만큼 좋은 게 안 나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만큼 긴장하고 고민하고 노력한 음악이었다.

 

: 맞다. 안하던 스타일의 코러스를 시도해 본 팀도 있고, 자신들의 음반에서 들을 수 없던 새로운 스타일의 편곡을 하기도 했다. 외부 뮤지션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등 다들 정말 대단했다.

 

: 참가한 대부분의 팀이 멜로딕한 스타일을 하는 밴드가 아니지 않나. 원래 자신들의 강한 음악이면서도 1집 헌정이니까 블랙홀 스타일의 멜로디를 얹혀내면서 묘한 매력을 가진 편곡이 나왔다.

 

: 얼마 전 지방 공연하고 관계자를 만났는데, 이런 헌정음반 생각을 했던 사람은 많았던 것 같다. 그러나 아무도 실행하지 못했는데, 조일동 편집장이 그걸 해줬고, 해냈다. 다들 이번 앨범 기획자에 대해 칭찬을 하더라.

 

: 감사하다.

 

: 맞다. 다들 기획 자체에 대해 칭찬하더라. 나도 고맙다.

 

: 팬들이 제작비를 모았고, 밴드들이 이 기획에 다 모여 줬고, 음반이 결국 이렇게 나오지 않았나.

 

: 아홉 장의 정규음반을 만들면서 나도 경험한 거지만, 진행하는 입장에서 얼마나 신경이 쓰였겠나.

 

: 블랙홀을 좋아하던 팬으로 시작한 밴드가 블랙홀 노래를 다시 연주했고, 블랙홀을 좋아하는 팬이 제작비를 낸, 진정한 팬이 주인인 앨범이라 생각한다. 물론 30년간 활동해 온 블랙홀이라는 멋진 밴드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다들 애써서 음반이 나왔는데, 기획자가 능력이 없어서 발매기념 공연이나 더 무언가를 할 여력이 없어서 좀 미안한 입장이다.

 

: 나도 헌정음반 공동 제작한 친구에게 얘기를 들었다. 참여 밴드 숫자가 많아서 공연을 하려면 이틀짜리가 되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는 일이라고.

 

: 이틀짜리 공연을 해도 누구와 누구를 짝지우고, 블랙홀과 어떻게 협연하고 이런 구성도 만만치 않겠다.

 

: 나는 지금 시장의 상황을 생각한답시고 이런 팀들을 데리고 작은 공연장이나 클럽에서 공연을 만드는 건 안하느니만 못하다고 생각한다. 나도 생각을 많이 했는데, 우리가 30주년 기념 공연을 기점으로 이런 후배들과 함께 쭉 나가야 한다고 본다. 기존의 생각이나 뻔한 얘기가 아닌, 밖에서 새로운 장면을 만들어야 한다.

 

: 장소나 공연의 느낌 같은 것을 전환시켜야 한다. 이렇게 힘들여서 모이고, 공연 기획까지 했는데, 고만고만한 곳에서 하는 순간, 밴드들이 보여주는 실재 내용과 달리 외부적으로는 고만고만한 공연이 되는 것이다. 누가 봐도 후배 밴드들과 무언가 만들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게, 다른 모습의 공연을 해야 한다.

 

: 블랙홀이 뭔가 더 보여줘야 한다.

 

: 앨범 나왔으니까, 아니면 앨범 만드느라 든 에너지가 아까우니까 대충 공연 하나 만들어서 하는 것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 제대로 된 무대에서 제대로 공연을 만들고, 그 힘으로 밴드도 한 단계 더 성장하는 거다. 앨범 나왔으니 소주 한 잔하기 위해 뭐 만들 필요는 없다. 준비 철저하게 해서 그레이드가 다른 무대 만들어야 한다. 블랙홀도 함께 할 거다.

 

: 『Re-Encounter The Miracle』의 참여 밴드들과 멋진 공연을 꿈꾸게 해줄, 블랙홀 데뷔 30주년이 되는 2019년에 발매될 새 앨범에 대해 얘기를 이제 시작해보면 어떨까 싶다. (편집자註. 인터뷰 당시에는 최종 디자인조차 확정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 다른 매체라면 몰라도 《음악취향Y》에는 노래를 만들며 느꼈던 세세한 감정 하나하나까지 얘기해 줄 용의가 있다.

 

: 어... 인터뷰가 그렇게 길어지면 녹음 풀기 힘든데...

 

: 그런 자세면 이거, 위험한 인터뷰인데....? (웃음)

 

: 이번 앨범은 사실 설명이 좀 필요하다.

 

: 녹음 한 다음에 드문드문 풀어서 뒷통수 치는 이상한 얘기 만들어 놓는 거 아닌가? 누구처럼. (웃음)

 

: 아, 저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습니다. 음악에 충성할 뿐입니다. (웃음)

 

: 한국사회, 진짜 이대로는 안 된다. 제대로 바꿔야 한다. 아, 우리 이 얘기 하려고 모인 게 아닌데? (웃음)

 

: 맞다. (웃음) 그러고 보면 지난 정규앨범이 2005년에 나왔다. 지금이 2019년이니 14년 만에 나온 새 정규앨범인 셈이다. 정규앨범을 발표하는 감회가 궁금하다.

 

: 14년 만에 나온 정규앨범이라는 게 솔직히 실감이 나지 않는다. 우리가 그 동안 딴 거를 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멤버들이 헤어져 있다가 ‘다시 한 번 뭉쳐서 앨범을 내보자’ 뭐 이런 게 아니다. 그 동안 우리는 크고 작은 공연을 계속 만들어 내고 무대에 서왔다. 그 사이에 다른 컨셉으로 『Hope』(2014)라는 편집 앨범을 내기도 했었고, 디지털 싱글 활동도 했다. 싱글을 발표하고는 어떻게 홍보를 할 수 있고, 어떻게 활동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해볼 기회도 있었다. 늘 이런 식으로 새로운 기획을 하고, 공연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실 정규앨범의 공백을 잘 못 느꼈던 게 사실이다. 지금, 또 최근 들어 여기저기서 14년 만에 정규앨범이라는 얘기를 들으니까, 그제서야 ‘아, 이게 14년 만에 내놓은 거구나’ 싶다. 사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되었다면 12년 만에 나온 정규앨범이 될 수도 있었다. 그 사이 시간이 좀 늘어지긴 했지만. 그렇더라도 늘 공연하고 팬들을 만나다보니 블랙홀의 정규앨범이 그렇게 나오지 않았었다는 사실에 대한 압박감이나 부담감 같은 거... 나는 거의 없었던 거 같다.

 

: 나도 좀 비슷하다. 기간이 중요하다기보다 정규앨범을 낼 여건이 안 되었던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언제나 10집까지는 활동을 계속 한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에 빨리 음반을 내야 한다는 부담도 그렇게 크지 않았다. 대신 블랙홀 정규앨범은 1집부터 항상 하나의 컨셉을 잡아서, 이를테면 『Miracle』(1989), 『Made In Korea』(1994), 이런 식으로 앨범을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의식이 있었다. 우리가 해온 역사를 잊지 않고 항상 염두에 두고 있었다. 블랙홀이 만들어 온 게 있으니까 정규앨범은 다른 작업과 달리 정말 잘 해야 했고, 신중을 많이 기했던 거 같다. 어쨌건 2019년에 조금 늦게 9번째 정규앨범이 나왔다.

 

: 새 정규앨범을 내면 어떤 활동을 해야 할 것인가 쉬지 않고 고민을 한 건 맞다. 밴드가 해 온 앨범들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니 말이다. 별로 못 느꼈었는데 말을 하다 보니, (웃음) 진짜 오래되긴 했네.

 

: 그렇다. 그런데 우리는 정말 그런 생각 못하고 있다가, ‘벌써 14년?’ 소리를 들으면 좀 벙벙하긴 하다. 동시에 시간이 정말 빠르다는 생각도 함께 든다. 데뷔 10주년 되셨다는 얘기 들으며 ‘그런가?’ 하며 전혀 실감 못한 채 활동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정규앨범 공백이 14년이었다니... (주상균 휴대폰 꺼내 인터뷰 장면을 녹화하고 있음) 형, 뭐해. 지금 여기(인터뷰) 집중해야 돼!

 

: 아, 나는 정규앨범에 대한 것을 숙명처럼 느낀다. 우리가 음악생활 하고 남는 것은 이 거, 정규앨범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는 항상 정규앨범을 통해 음악적으로 발전하고 지향점도 새로 잡아나가 왔다. 지난 14년 동안, 특히 8집 『Hero』가 만들어지고 나서, 솔직히 우리가 방황한 게 맞다. 물론 열심히 활동을 했지만. 일단 우리 스스로 기가 꺾였었다고 할까? 그 당시 우리는 우리가 만들 수 있는 최고의 앨범을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그에 비해 성과가 그다지 좋지 않았다. 밴드와 주변 모두 힘들었던 시기였고. 외면당한다는 기분도 들었다.

 

: 성과의 차원이 여러 가지 일 수 있겠다. 이를테면 『Hero』 앨범으로 2006년 한국대중음악상 록 부분 상을 모두 휩쓸기도 했고.

 

: 물론 그렇기도 하다. 8집으로 한국대중음악상에서 록 앨범과 록 노래로 수상해서 음악적으로 인정받은 것은 성과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이 앨범에 담긴 음악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었다. 헤비메탈 음악으로 더 많은 사람들과 만날 수 있다는 자신도 있었다. 그런데 사회전반적인 분위기는 메탈이 유명무실하게, 워낙 영향력이 축소되다보니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사람이 너무 줄어버렸다. 나름 최선을 다해 노력했던 것 같은데... 그 부분이 아쉬웠고, 힘이 많이 빠지기도 했다.

 

: 14년 전으로 돌아가 보면, 한국대중음악상도 두 개나 받았고, 음악적인 평가도 되게 좋았다. 그렇긴 했어도 당시 환경이 지금과 너무 달랐다. 인터넷이 있긴 했지만, 지금보다 커뮤니티도 적었고, 온라인으로 음악적인 소통을 할 수 있는 창구도 적었다. 동시에 그러한 온라인 네트워크가 가파르게 성장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우리는 고전적인 방식으로만 홍보활동을 했다. 일간지에 기사를 내야하고, 방송에도 출연을 해야만 사람들이 새 앨범 소식을 알 수 있었고, 우리도 그렇게만 생각했다. 아마 지금 같으면 그렇게 홍보하지 않을 거고, 더 알려질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 물론 온라인 환경이 그 때와 지금이 많이 다르긴 하지만. 언론에 푸쉬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고, 그러지 못해 아쉽고 안타깝게 생각했던 것 같다.

 

: 사실 앨범 내고 우리가 상을 받을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다. 그리고 그걸 바란 것도 아니다. 오히려 두 개의 상을 받았던 건 큰 영광이었다. 내가 나이가 들고 손자가 생긴다면, 할아버지가 이런 상을 받았다고 자랑할 만 한 일이다. 그러나 그와 상관없이 헤비메탈, 아니 음악시장 자체가 축소되어 가는 당시의 현실 속에서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봤자 효과가 없다는 걸 느끼는 게 힘들었다. 이를테면 우물을 팠는데, 정말 열심히 팠는데 물 한 방울 안 나오는 그런 느낌이었다. 뭘 해도 안 되는 느낌? 더군다나 블랙홀은 신인도 아니고, 그 때도 이미 선배였다. 우리가 해 온 음악, 또 좋은 음악을 하는 다른 동료나 후배들이 해 온 이 음악의 명맥을 이어야 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당시 우리는 답을 찾지 못했다. 이후로 싱글만 내는 식으로 활동 했던 이유도 일정부분 그와 연결되어 있다. 그러다가 문득 그건 그거고, 우리 팀이 걸어온 길이 있음이 떠올랐다. 우리가 나갈 길은 따로 있구나, 세상으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던 안 받던 상관없이 우리가 해 온 길, 우리가 가야 할 길로 다시 가자. 적어도 10집까진 해야 하지 않겠나하는 마음이! 솔직히 이번 아홉 번째 정규앨범도 발표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현실만 보면 정규앨범을 찍는 건 기념음반 내는 것에 가깝지 않나? CD 시장도 다 없어졌고. 그러나 우리 중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게 30년의 저력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지난 시간 동안 뭘 바라고 이걸 해 온 게 아니라는 거다. 그저 열심히 해 왔고, 그걸 인정받아온 게 우리의 30년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누가 어떻게 생각하던 일단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최선을 다해 만들자, 그 다음은 생각하지 말자. 일단 최선을 다하자. 그냥 집중하자. 지금의 작업에만 집중하자.

 

: 블랙홀의 강점이 하나 있다면, 있다고 하고 없다고 안 하는 게 아니라는 거다. 우리 멤버들끼리 ‘하자’고 하면, 있어도 하고 없어도 하는 거다. 내부 정리만 되면 우리는 곡을 만들고 앨범을 낼 수 있다, 그냥 가는 거다. 이번도 마찬가지다. 덧붙여서 블랙홀 데뷔 30주년을 맞이해서 트리뷰트 앨범까지 나왔다. 운 좋게도 그 앨범이 나오고 얼마 안 있어 블랙홀 9집이 나온다. 또 바로 이어 30주년 기념 공연을 한다. 내년에는 트리뷰트를 해 준 후배들과 같이 언제나처럼, 그러나 또 새롭게 공연을 만들 거다. 아름답게.



 
(계속)

Editor

  • About 조일동 ( 151 Article )
SNS 페이스북 트위터
TOP
Error Message : Query was emp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