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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홀 #2 : 아홉번째 정규앨범 『Evol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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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정보



“사람이 연주하는 것만으로도 컴퓨터로 만든 소리 못지 않게,
정확하고 강한 소리를 만들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


: 그렇다. 이제야 새 앨범 『Evolution』에 대한 인터뷰가 시작되는 것 같다. 이번 작품에는 10곡이 수록되어 있다. 앨범에 수록될 곡을 이메일로 받아보고, 뭐가 잘못된 줄 알았다. 10곡인데 36분이었다. 앨범 분위기를 느껴보는 맛보기로 곡의 일부만 잘라서 보내준 건가 싶었다. 막상 들어보니 모든 곡이 3분대였던 거다. 그 이전까지 5분, 6분, 7분에 육박하던 대곡이 앨범에 가득했던 경험에 비춰볼 때,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오랜 팬이라면 깜짝 놀랄만큼 곡이 짧아졌다. 이렇게 만든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 물론이다. 그렇게 기획한 의도가 있다. 앨범을 만들기 전에 멤버들과 새 앨범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멤버들은 물론이고 주변사람들 모두 블랙홀의 새 앨범은 과거 Judas Priest나 Metallica가 정점을 찍던 시절처럼 헤비메탈의 종결점 같은 앨범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도 그랬었고, 그렇게 하고 싶었다. 근데, 반대로 생각해보니 그렇게 우리가 좋아하던 해외의 아티스트들이 엄청난 대작을 만들던 시절은 그 시대의 일이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과 다른 시대다. 우리는 이미 「Universe」(2014)를 작업하면서 조금 더 앞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래서 새 앨범에서는 우리 이후의 시대에 대해서 쓰기 시작하는데, 음악적으로는 더 간결해야 하고 군더더기가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휴대폰만 봐도 점점 디자인이나 패턴들이 군더더기가 없고 깔끔해지고 있지 않은가? 앞으로는 더 그럴 것이지 않겠나? 그래서 거기에 맞는 밝고 깔끔한 음악을 만들고 싶었다. 진흙 속에서 무얼 찾고, 다시 가공하는 시대는 끝났거든. 앞으로의 시대는 이미 다 되어 있고 그 안에서 선택하는 시대가 될 것이다. 시각적으로도 청각적으로도 마음에 와 닿고, 한 번 들었을 때 언제든 반길 수 있는 깔끔한 음악을 구현해보고 싶었다. 악곡도 예전에는 거대한 인트로가 따로 있고, 중간 브릿지에 간주 나온 후, 다른 브릿지가 또 등장하고 하는 식으로 곡을 풍성한 장문의 형태로 만들려고 했다면, 이번에는 시처럼 함축시킨 형태로 만들었다.

 
(편집자註. EP 『Hope』(2014)의 첫 곡으로 미디와 컴퓨터 작업을 적극적으로 사용한 곡이다.)


: 그래서 코러스도 두텁게 느껴진다. 이전 블랙홀의 음악에서 코러스가 없던 것은 아니지만, 강조의 정도가 달라졌다. 이전의 블랙홀이 몇 개의 훅이 있는 리프가 작렬하는 사이로 리드 보컬이 날카롭게 등장했다면, 이번 앨범에서는 코러스가 곡을 이끌어가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아니 코러스가 아니라 각각의 보컬을 쌓다보니 이런 모양이 된 것 같은 느낌이다. 이렇게 코러스를 강조한 의도가 있는가?

 

: 그 전에 한 가지 짚고 싶다. 우리가 하는 음악이 ‘나는 너희와 상관없어. 너희가 안들어도 나는 이 음악에 만족한다’는 식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과거에는 나도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은 많은 사람이 우리의 음악에 공감했을 때, 나도 존재의 의미가 찾아졌다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할수록 곡을 쓰면서 우리 노래를 넓은 광장에서 많은 사람들이 서로 어깨동무하고 같이 뛰고 따라 부를 수 있는 음악을 상상하게 되었다. 그런 분위기를 구현해내려고 코러스를 지금처럼 쓴 거다.

 

: 평론가의 입장에서 날카롭게 잘 짚어줬다고 생각한다. 코러스 부분에 대해서는 상균형의 의도도 많이 들어갔지만, 나는 이번 앨범 작업에서 코러스를 한 게 아니라 같은 보컬 개념으로 노래하고, 소리를 쌓았던 거다. 우리 블랙홀의 특징이 트윈기타 시스템, 트윈페달 드럼과 베이스의 어울림 등과 함께 풍부한 코러스, 즉 보컬 라인이라 본다. 바로 그 보컬을 강조한 것이라 봐주면 좋겠다.

 

: 들을 때는 굉장히 풍부한 코러스로 들리겠지만, 대부분의 코러스가 두 명 혹은 세 명의 목소리로만 만들어졌다. 코러스를 여러 번 여러 성부로 녹음한 곡도 있지만. 그럼에도 풍부한 소리처럼 느껴지는 것은 코러스 방식을 바꿨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내가 부르는 메인 멜로디가 있으면 코러스를 위로  붙였는데 (편집자註. 3도-5도 위의 음을 쌓는 방식을 말한다), 이번 작업은 바로 아래 음을 붙이는 식으로 스타일을 바꿨다. 음을 많이 더하지 않아도 훨씬 풍성한 느낌을 주는 코러스가 만들어졌다.

 

: 코러스가 풍부하고 정말 잘 하지 않았나? (웃음) 그런데 녹음 과정에서는 그 코러스 부분이 정말 금방금방 녹음이 끝났다. 우리가 Queen처럼 엄청나게 오버더빙 하고 심혈을 기울여서 이 부분을 만든 건 아니다. 어떻게 보면 몇 번 안 부르고 만들었다.

 

: 원재는 툭 부르니까 벌써 끝나 있었다. (웃음)

 

: 얘기를 듣고 보니 이번 앨범 속 블랙홀의 코러스는 음을 많이 쌓기보다 뭔가 메인보컬 혹은 연주와 주고받는 느낌이기도 하다.

 

: 맞다. 그런 느낌으로 진행한 거다.

 

: 이런 스타일의 코러스는 과거 Def Leppard 같은 팀이 자주 사용했다. Dokken이나 Bon Jovi가 앞서 이야기 했던 음을 위로 쌓아가며 화려하게 하는 식이었다면, 그 시절 Def Leppard는 좀 더 오밀조밀하면서도 단단하게 느껴지는 코러스였다. 물론 블랙홀의 이번 코러스는 화음을 쌓는 방식이 다소 다르긴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번 작품에 담긴 이미지부터 소리까지 미래 지향적인 성격을 강하게 드러내고, 그렇게 느껴지지만 그러한 경험을 하게 해주는 소리의 요소 하나하나를 뜯어보면 과거부터 사용한 음악적 방식, 기본적인 밴드 악기와 연주방식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인 거 같다. 미래를 상상하는 음악이라고 하면 미디나 일렉트로니카 사운드를 불러오는 식으로 가상악기를 강조하곤 하는 일반적인 시도와 다르다는 거다.

 

: 정확하다.

 

: 맞다. 「A.I.」 티저 영상에 나왔던 것처럼, 미래가 되었을 때 음악은 기계가 연주하는 것이 되었을 수도 있다. 어쩌면 기계가 더 잘 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게 있다. 우리는 사람이 하는 음악을 보이고 싶었다. 미래도 사람이 살고 있고, 사람은 사람이 만드는 소리, 기계가 아닌 자연적인 무엇을 반드시 찾게 마련이다.

 

: 미래에 로봇이 무엇까지 할 진 모르겠다. 하지만 음악만은 사람이 하는 일로 남겨두고 싶달까? 모든 것이 기계가 할 거 같지만, 분명 사람이 해야 할 일이 있고, 사람이 꼭 있어야, 사람의 것을 놓쳐서는 안 되겠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커버나 이미지만 보고 미래니까 음악은 들어보지도 않고 미디나 새로운 소리로만 채워져 있을 것이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우리가 생각한 미래는 그런 게 아니다.

 

: 일렉트로니카나 가상악기의 요소는 일부러 배제하려고 했다. 손으로, 몸으로 할 수 있는 소리로 미래를 그리고자 했다.

 

: 인위적인, 오버스러운 무엇을 뺀, 정말 심플한 밴드 사운드다. 물론 가사는 미래에 대한 얘기고. 음악적인 요소도 과거 블랙홀이 추구하지 않던 스타일을 더했기에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지, 기본적으로 이번 앨범은 순수한 밴드의 사운드다.

 

: 밴드 멤버가 코러스를 모두 소화하는 팀이 많다면 많겠지만, 또 따져보면 그렇게 많지도 않다. 멤버 전원이 여러 가지 스타일의 코러스를 모두 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 블랙홀의 장점이라 생각한다. 그것도 자연스러운 우리의 목소리로. 사실 기계로 사람 목소리를 만지기 시작하면 엄청나게 많은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것을 배제하고,각자의 목소리를 그대로 드러내려고 했다. 이번 음반에 담긴 것은 누구의 목소리인지 들으면 알 수 있는 우리 소리다.

 

: 오토튠은 쓰지 않았다는 얘기로 들으면 되나?

 

: 그렇다. 순수한 사람의 음성이다.

 

: 기타도 마찬가지다. 이펙터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앰프로 만든 소리를 스트레이트하게 갔다. 솔로도 그렇게 만든 소리를 유지했다. 플렌저 계열의 이펙터를 원재 연주에 조금 사용한 정도가 다다.

 

: 그건 구성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사용이고, 가능하면 손악기의 맛과 소리를 그대로 실었다.

 

: 다른 악기와 달리 드럼의 경우는 다른 앨범과 비교해서 킥 소리부터 절제랄까? 강한 터치지만 톤이 달라졌다. 과거에는 층고 높은 동굴 같은 데서 울리는 것 같은 소리를 추구하지 않았나? 물론 이러한 앰비언트가 풍부한 드럼 소리는 수많은 헤비메탈 밴드의 로망이기도 하다. 블랙홀도 그러한 드럼 사운드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했던 밴드이기도 하고. 그런데, 이번 음반의 드럼 소리는 분명 강하지만 울림이 적은, 정교하고 뭔가 딱딱 떨어지고 사운드의 여유가 사라진? 어쨌건 확연히 달라졌다.

 

: 타이트한 소리.

 

: 맞다. 그 표현이 가장 정확한 거 같다.

 

: 사실 이번 앨범을 들으시는 분들에게 그 부분을 꼭 설명해주고 싶었다. 전통적인 헤비메탈의 소리가 있다. 악기 사운드만 들어도 알 수 있는 메탈의 특징이 있다는 거다. 그런데 최근 등장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새로운 음악들, 이를테면 EDM 같은 장르를 들어보면 록이나 메탈이 따라갈 수 없는 사운드 영역이 있다. 그게 바로 리듬 파트다. 그러한 장르의 리듬 소리가 헤비메탈보다 훨씬 강하고 또렷하게 들린다. 한 때 헤비메탈의 자랑이었던 고출력의 리듬파트가 만드는 ‘댐핑’이라는 것에서 오히려 새로운 장르에게 밀리고 있다.

 

: 샘플링과 기계로 만든 그 고출력의 저음.

 

: 맞다. 그게 공연장에서 들어도, 음반으로 들어봐도 그 저음의 중압감과 비교해서 헤비메탈이 약한 게 사실이다. 헤비메탈이 중음역대는 훨씬 강하고 파괴력이 있는 게 맞지만, 전통적인 메탈 사운드는 요즘 음악과 비교해서 저음이 떨어지는 게 맞다. 그래서 이번 작업을 하면서 그 부분을 꼭 극복하고 싶었다. EDM보다 강한 저음을 드럼 녹음으로 만들어보고 싶었다.

 

: 그러한 드럼 사운드를 만들기 위해 녹음 과정에서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은 무엇이었나? 세게 친다고 반드시 말씀하신 그런 강한 소리가 나는 것은 아니지 않나?

 

: 그렇다. 일단 이번 앨범 작업에서 가장 중시했던 것은 정확한 연주였다. 마디 단위로 몇 분의 일초라도 어긋나는 소리가 있다면 다시 녹음했다.

 

: 큐베이스 화면에서 소리를 당겨올 수도 있지 않나? (웃음)

 

: 그건 다른 종류의 작업이다. 우리는 손발로 정확함을 만들어내려 했다. 드럼 킥 하나라도 힘이 덜 실리거나 살짝 어긋나면 모두 다시 연주했다. 녹음할 때부터 정교함과 파워에 대해 고민했고, 덕분에 댐핑이 강한 소리가 나왔다고 자부한다.

 

: 예전 아날로그로 녹음할 때보다 더 세밀하게 끊어서 확인해볼 수 있게 되었고, 우리는 그렇게 작업을 하다보니 예전 녹음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들어가게 되었다. 우리는 이런 연주를 담아내고 싶었다.

 

: 사람이 연주하는 것만으로도 컴퓨터로 만든 소리 못지않게, 정확하고 강한 소리를 만들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 모든 곡의 한 마디도 허투루 넘어가지 않았다.

 

: 치고 들어보고, 또 치고 다시 들어보고, 다시 또 치고. 여름 한 철을 넘겨서 이렇게 하나하나 만들어갔다.

 

: 드럼을 제외한 악기 파트는 우리 세 사람이 함께 모여서 연주하고 녹음하고 같이 듣고 다시 편집해보고 다시 듣고 다시 연주하기를 반복했다.

 

: 드럼의 관욱이도 같은 방식으로 연주했다. 리얼로 이렇게 연주하고, 다시 이 소리를 샘플로 떠서 섞었다.

 

: 샘플도 정말 연구를 많이 했다. 그래서 기존의 샘플링 드럼 소리가 아니라 우리가 샘플 소스를 만들고 그걸 리얼 드럼과 어울리게 다시 배치했다.

 

: 이제 청자의 몫이다. 우리가 노력한 것은 노력한 것이고, 청자들이 이 소리로 만들어진 앨범을 어떻게 듣느냐는 또 다른 것이기도 하니까.

 

: 집에서 평범한 오디오로 기존 헤비메탈 밴드의 연주와 우리 이번 앨범 소리를 일부러 비교해본다. 우리집에 있는 오디오의 경우이긴 하지만, 이번 앨범의 드럼 소리가 나오면 스피커가 찢어질 것 같다. 특히 킥 소리가 연속해서 나올 때는 확실히 그렇다.

 

: 멤버들끼리 서로 우리집 오디오 상황에서는 어떻게 나오나 돌아가며 테스트를 했다. 스피커의 조합을 바꿔도 보고, 서로 다른 환경, 다른 조합에서도 우리가 들려주고 싶었던 소리가 안정적으로 나오는지 체크했다. 단톡방에 우리집에선 어떤지 서로 의견도 올리고. 물론 이건 청자 개인이 느낄 몫이다. 사람마다 각자 자신이 좋아하는 소리가 있는 법이니까. 이번 『Re-Encounter The Miracle』에 참가한 후배들의 드럼 소리 연출이 다 다른 것처럼. 각자의 평론적인 시각이 있고, 그에 따라 우리가 만든 드럼 소리를 어떻게 들을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다. 정석이 하나가 있는 게 아니니까. 분명한 건 우리가 예전 헤비메탈 사운드, 이를테면 타마 드럼 특유의 단단한 울림을 강조하는 그런 소리를 쫓아가지 않기로 했다는 거다. 드럼은 물론 베이스, 기타 소리 모두. 요즘 등장하는 수많은 음악도 참고했지만, 결국 우리 소리를 우리 식으로 만들어내는 과정이었다.

 

: 볼륨을 줄여도 우리 새 앨범은 드럼 소리가 쭉 빠져 들린다. 킥은 물론 탐탐 소리 하나까지 선명하고 타이트하게 들린다. 어떤 악기도 다른 악기나 무엇을 위해 소리를 희생하지 않게 하려는 생각으로 작업했다.

 

: 말씀하신 내용을 잘 보여주는 노래가 「M. Follow」가 아닌가 싶다. 미드 템포에 어쿠스틱 기타까지 사용한 곡이다. 당연히 드럼 소리가 강하게 치고 나올 노래가 아니다. 그런데 중간에 분위기가 전혀 다른 업다운 기타 리프와 드럼 연주가 팍 치고 지나간다. 그런데 이 전혀 다른 소리가 어쿠스틱 연주 사이에 등장함에도 튀거나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어느 악기 소리도 희생하지 않는 연주라는 얘기가 그런 부분을 의미하는 게 아닌가 싶다.

 

: 그 노래에서 만일 드럼과 기타가 치고나오는 편곡이 없다고 생각해보라. 그건 그냥 팝이다. 팝 스타일의 곡이라 해도 블랙홀스러운 헤비메탈의 뉘앙스를 담은, 그런 느낌을 믹스해보려 했다.

 

: 그 노래와 얽힌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나는 그 곡을 쓸 때 SNS를 거의 하지 않았다. 그래서 인터넷 검색을 통해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사용자의 문화, 사용자들이 느끼는 기분을 상상하며 쓴 거다. 처음엔 “맞팔”이니 “선팔”, “언팔” 하는 말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 내가 맨날 그러고 있다. (웃음)

 

: 사실 “사기캐” 얘기도 나오고 하는데, 노래를 들으며 이런 걸 직접 체험하기보다 책을 배운 게 아닌가 싶었다. (웃음) 게임 안하시죠? 뭔가 진정성이... (웃음)

 

: 스타크래프트까지는 나도 잘 했다. 그런데 리그 오브 레전드부터는 사실 우리 아들들이 하는 세계다.

 

: 작가가 모든 걸 다 직접 해보고 하는 건 아니지 않나? 상상의 세계로... 이것이 작가의 영역이다. 다 알잖냐? (웃음)

 

: 아마 듣는 사람들도 비슷한 생각 할 거 같다. (웃음)

 

: 「M. Follow」 쓸 때는 작가적 상상이었던 거 맞다. 근데 지금은 내 삶이 정말 그렇게 되었다.

 

: 인스타그램을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다.

 

: 그렇다. 처음에 맞팔 한 번 잘못 눌렀다가 마누라한테 엄청 혼났다. (웃음)

 

: 리더로서 상균이 형이 잘하고 있다는 게 저런 맞팔 잘못해서 형수님한테 혼나면서도 해보고 있다는 거다. (웃음) 농담이고, 지금 우리가 9집을 내고, 예전처럼 방송국 찾아다니고 했다면 얼마나 알려질까 회의적이다. 물론 그런 활동도 전혀 하지 않겠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유튜브, 페이스북, 팟캐스트, 인스타그램 등 예전과 다른 방식의 홍보와 만남의 기회가 얼마나 많아졌나? 이러한 영역에 직접 뛰어들어서 하고 있지 않나? 그리고 효과가 바로 나타나고 있다. 구독수도 조금씩이지만 늘고 있고, 그러한 매체를 통해 블랙홀의 새 앨범 소식을 들었다는 얘기도 들린다. 현시대의 변화를 따라가면서 블랙홀 방식으로 해내는 게 필요하다.

 

: 이원재는 페이스북 활동을 오래 전부터 해 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 최근 계정이 정지당한 것으로 알고 있다. 언제 다시 복귀하나?

 

: 다시 해야 하는데, 귀찮아서. (웃음) 난 한 10년 했는데, 기타로 연주한 노래 때문에 짤려서. 또 짤리면 아빠 이메일로 해야 하나, 아니면 엄마 핸드폰 번호로? (웃음)

 

: 어제 대전에 공연 갔었는데, 거기서도 원재 페이스북 짤린 얘기를 하던데, 유명한 계정이었나보다. (웃음)

 

: 처음엔 나도 기타로 음악 연주한 게 문제인 줄 알았는데, 두 번째로 계정에 문제가 생기고 나서부터는 꼭 그게 이유가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갑자기 세션 만료라고 뜨는데, 어떤 시스템이나 메커니즘으로 계정 관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 내가 갑자기 계정이 정지되고 보니 그런 경험을 한 사람이 주변에 꽤 있더라. 그런 친구들하고 모여서 ‘뭐가 문제지...’ 그러고 있다. (웃음)

 

: 아니, “빅데이터와 알고리즘까지 우리를 위하여”(「A.I.」가사)라더니 이원재에게는 꼭 그런 게 아닌 모양이다. (웃음)

 

: 얼마 전 페이스북 고객 데이터 유출 사고 관련 기사 보고, ‘그렇지, 이 놈들... 다 망해라’ 그런 생각이 막 들었다. (웃음) 망하고 가입자 모두 다른 플랫폼으로 싹 이동을... (웃음) 그나저나 조일동 편집장은 인스타그램 안 하는 거 같다.

 

: 페이스북만 하고 있다. 이원재는 인스타그램 계정이 있는가?

 

: 요즘이 어떤 시대인데, 인스타그램을 안하는가? (웃음) 나는 오래 전부터 인스타그램을 이용하고 있다. 상균이 형도 요즘 인스타그램 열심히 하고 있다.

 

: 나는 최근에 인스타그램을 시작했다. 사진 막 찍어 올리고 있다.

 

: 이미지와 친하지 않아서 인스타그램을 못하겠다.

 

: 사진과 동영상 조금씩 올리고 있다. 인스타그램을 사용해보니 음악 활동 하는 친구들이 쓰기 좋은 플랫폼이란 생각이 든다. 글을 많이 쓰기보다 일상의 감성이나 활동을 사진으로 담아두기 좋다.

 

: 앨범 수록곡의 순서가 2번 트랙인 「Log In」과 10번 「Home」을 제외하면 ABC 순서다. 일부러 그렇게 배치한 것인가?

 

: 알파벳 순서? 어디.. 어? 「Log In」과 「Home」 제외하면 정말 그렇구나.

 

: 그런 생각을 했던 건 아닌데, 얘기 듣고 보니 그렇다. 어떤 의도를 한 건 아니다.

 

: 제목도 모두 영어다. 한글 가사임에도 굳이 영어로 제목을 쓴 이유가 있는가?

 

: 왜냐하면 미래에는 한글, 영어 사이의 구분 같은 게 거의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정도 영어는 영어가 아니라 그냥 한국어와 같이 사용하는 일상어 수준이다.

 

: 1, 2번 트랙은 연주 분위기도 닮아있고, 곡의 가사도 비슷한 결이다. 그러나 3번 트랙 「Dimention」은 미드 템포고 곡의 분위기, 가사 모두 앞의 두 곡과 전혀 다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미래 이야기가 아닌 것 같다. 뿐만 아니라 블랙홀이 지난 8장의 앨범을 거치면서 선보였던 음악과도 꽤 다른, 새로운 스타일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Evolution』 수록곡 중 가장 좋아하는 노래다. 이 곡을 쓰게 된 계기나 의미를 좀 설명해 달라.

 

: 맞다. 전혀 새로운 시도의 곡이다. 「Dimention」은 개인적인 의미가 큰 곡이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바로 전의 경험에서 시작되었다. 갑자기 고향에 가보고 싶다는 거다. 그래서 가족을 모두 데리고 엄마의 고향을 다녀왔다. 그렇게 다녀오는 길에 아버지 고향인 부안에 들렀다가 군산으로 넘어오게 되었다. 그 사이에 아주 긴 다리가 있다. 그게 아마 새만금 방조제일 거다. 거기를 가면 바다와 하늘 밖에 보이지 않는다. 운전을 하면서 백미러로 엄마를 보는데, 하염없이 먼 곳을 응시하고 계시더라. 진짜 하염없이. 마치 이 세상하고 다른 세상을 보고 계시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날의 그 느낌을 살려서 쓴 곡이다.

 

: 근데 그걸 내가 맞췄다.

 

: 무슨 얘기인가?

 

: 상균이 형이 써 온 곡을 듣자마자 내가, ‘형, 이거는 느낌이 석양이 지는 바다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뭐 그런 느낌이네’라고 얘기했다. 상균이 형이 깜짝 놀라더라. 그 때도 이런 곡의 사연을 들려준 것은 아니었다. 그냥 곡을 듣는 순간 그런 느낌이 왔고, 기타 연주도 곡의 믹싱도 그러한 느낌을 살리면서 가자고 했다.

 

: 아! 나한테도 얘기를 좀 해주지. 그런 사연을 알고 녹음 했으면 베이스 연주도 더 좋아졌을텐데. (웃음) 몰랐네.

 

: 「Dimention」의 기타 솔로도 이전 블랙홀 느낌과 좀 다르다. 기타 솔로가 두 번이 나오는데, 내가 듣기에는 첫 솔로가 이원재의 연주인 것처럼 들린다.

 

: 맞다. 어떻게 알았지?

 

: 멀리서 딴 세계를 바라보는데 기타 솔로는 이원재 느낌이었나보다. (웃음)

 

: 새만금 방조제, 그 다리가 바다 위로 20분? 아니 그보다도 더 길게 지나가야 한다. 그 긴 다리를 지나는 내내 계속 엄마만 보게 되었다. 하염없이 멀리를 바라보는 엄마의 시선을 보면서 엄마가 이제 돌아가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 정말 그런 느낌을 줄 때가 있는 모양이다.

 

: 이 노래를 정말 좋아하는데, 그건 음악 스타일의 새로움도 있지만, 곡 속에 담긴 감성도 이전 블랙홀과 달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게 이런 사연에서 나온 것인지는 생각 못했다. 사실 『Hero』 앨범에도 아버지와의 추억을 그린 「처음 쓰는 편지」가 있지만 그 때는 이렇게 울렁울렁 혹은 일렁일렁대는 감정이 아니었다.

 

: 맞다.

 

: 그리고 이 곡의 기타 솔로가, 아니 이번 앨범에 수록된 기타 솔로가 전반적으로 예전처럼 날카롭다거나 속주를 강조하며 뭔가를 보여주고야 말겠다(? 웃음)는 모습이 사라졌다. 노래로 표현할 수 없는 멜로디를 더 보강한다는 느낌이랄까? 기타 솔로를 만들면서 착안했던 부분이 있는가?

 

: 예전에는 녹음하기 전에 뭔가 기타 솔로를 다 짜고 가곤 했다. 그런데, 이번 앨범 작업을 할 때는 상균이 형과 함께 백지상태에서 그 순간의 감정에 충실한 솔로를 연주하려고 했다. 아무런 연습 없이, 녹음된 리프나 리듬 파트를 들어보고 그 느낌을 살려서 우선 연주를 했다. 그걸 다시 들어보고 그 느낌이 좋으면 그걸 토대로 다듬고, 스케일도 손보고 해서 솔로를 완성했다.

 

: 정말 연습 없이, 즉흥으로 감정을 살려서.

 

: 베이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 미리 기타 솔로를 만들어두면, 거기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이미 그 리프 위에 이런 기타 솔로 진행하는 게 스스로에게 익숙해지는 거다.

 

: 지금 얘기를 들으며 생각해보니, 나는 이번 앨범 녹음 중 「Dimention」이 많이 어려웠었다. 뭔가 곡이 짜여져 있지 않은 듯, 묘하게 복잡했다. 감정선도 그렇고. 지금 얘기를 들어서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니라, 이런 사연 자체를 몰랐던 입장에서 곡이 어렵다는 느낌이었다. 내 연주 스타일이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나는 이런 곡이 더 어렵게 느껴진다. 곡만 봐서는 단순한데, 연주를 하면서 베이스 라인을 음을 쌓는 느낌으로 가야하나 어떻게 풀어가는 게 효과적일지 고민이 많이 되었다. 상균이 형이랑 얘기를 많이 하면서 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녹음하고 연주를 한다는 게 그런 종류의 대화를 나누기 쉽지 않기도 하다. 하여튼 「Dimention」은 녹음할 때 어려웠다.

 

: 「Dimention」, 어렵다. 이 노래 리프 연주하려고 해봐라. 단순한 거 같은데 연주하기 엄청 까다로운 음들이 계속 반복된다.

 

: 베이스를 자세히 들어보면 알겠지만 이런 노래는 베이스가 유연한 거 같으면서도 킥 드럼과 0.01초라도 어긋나면 그 맛이 안 나오게 되어 있다.

 

: 개인적으로 이전 『Hope』 앨범에 수록되었던 「진격의 망령」이나 「단기 4252년 3월1일」같은 박진감 넘치는 얼터네이트 피킹의 베이스 라인이 이번 앨범에 등장하지 않은 것이 조금 아쉽기도 하다.

 

: 지금 와서 이전 앨범과 비교해 보면 그런 부분이 느껴질 수도 있는데, 막상 녹음하던 당시에는 그 같은 느낌을 전혀 갖지 않았었다. 예를 들면 「M. Follow」의 베이스 한 마디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를 두고 상균이 형하고 정말 여러 연주도 해보고 했었다. 나중에 실리진 않았지만. (웃음) 나의 입장에서 이번 앨범 작업을 해석해보면, 우리는 밴드고 전체 곡을 가지고 연주하는 게 맞다는 거다. 내 것을 더 보여줘서 어떻게 돋보여야 할까 하는 게 아니라는 거다. 녹음하면서 그런 부분들을 다시 더 생각하게 되기도 했다.

 

: 녹음실에서 녹음하는 과정에서 아이디어를 내고 다듬으며 진행을 하려고 한 게, 아까도 얘기했지만 미리 만들어 놓으면 내 연주인데도 내가 그거로부터 잘 벗어나지 못하는 게 있기 때문이다. 연습하면서 그 순간 가장 나은 거라고 여겨졌던 게 딱 있으니까. 그런 걸 한 번 만들어 놓으면 후발로 떠오른 아이디어는 뭔가 어색하게 느껴지는 거다. 즉흥적으로 감정에 충실하게 연주하게 되면서 확실히 풍부해 지는 게 있다. 문제는! 그렇게 하니까 프레이즈가 기억이 안 난다. (웃음) 내가 녹음한 걸 틀어놓고 다시 음을 다 따고 앉아있다. (웃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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