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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켓맨》 : 전형적인 음악인 서사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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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정보

《보헤미안 랩소디》(2018)의 예상치 못한 국내 흥행으로 인해 사실상 한국 관객들에게 두 작품 간의 비교는 필수 불가결한 과정이었다. 물론 이는 온당하지 못한 과정이기도 하다. 성공의 행보를 이어가던 ‘장차 음악산업계의 전설’이 매니지먼트의 전횡과 성장기의 상처와 사생활의 원치 않는 행보로 인해 추락의 길에 들어서고, 이를 감동적인 구조로 극복하는 피날레는 현대의 신화라 할만하다. 이런 신화의 구조 면에서 《보헤미안 랩소디》와 《로켓맨》은 결국 유사함을 피할 수 없고, 연출자와 제작자들이 필히 택할 수 있는 구성이다. 이런 유사한 흐름은 영국 씬의 전설이 그럴진대 80년대 미국 씬의 Mötley Crüe를 다룬 《더 더트》(2019)에서조차 근본적인 차이를 찾기가 힘들어진다. Oliver Stone의 《도어스》(1991)나 Kirt Cobain 같은 일찍 타계한 인물들을 다룬 다큐/극화 등을 제외하고선 대체로 그런 구성이 아닐까. 내 마음속 이미 만들어진 Led Zepplin 영화에서도 이런 상황은 마찬가지일 듯하고, 앞으로 만들어질 음악인 전기 영화들의 운명은 이렇듯 서로서로 비슷하게 보인다.

이런 반복이 국내에서의 《로켓맨》의 흥행 저조를 설명할 수 있는 요소는 아닌 듯하다. 사생활을 죽으로 쑤시고, 영화인으로서의 성실함도 현재 의심되지만 아무튼 Brian Singer가 《보헤미안 랩소디》의 연출을 잡고 지휘봉을 잡은 초기의 목표는 명확했던 것으로 짐작한다. 전설이 된 한 LGBT 아이콘의 극적 서사의 구현이 아니었을까. 이런 자긍은 《보헤미안 랩소디》의 곳곳에 스며있는데, 그걸 알아보든 말든 아무튼 한국 관객들은 다소 별개의 이유로 영화의 흥행에 설득이 되고 힘을 보탠 듯하다. 명료한 서사와 쉬운 이야기, 뭐에 갖자 붙어도 될 교훈의 명분이 뚜렷한 면이 이 작품엔 있었다. 동성 결혼으로 인해 Freddie Mercury에 이어 못지않은 LGBT 아이콘은 물론, 인류의 제도적 성숙에 기여한 Sir Elton John 역시 온당한 수혜를 입었어야 했다. 아무튼 국내에선 그렇게 되지 못했다. 그럼 작품으로 보자면 《로켓맨》 쪽이 보다 더 평이하고 안이한가? 아니 그 반대라서 오히려 그게 문제였던 듯하다.

Dexrter Fletcher는 주크박스 뮤지컬 방식으로 전기의 구성이 아닌 보다 능동적인 방식으로 연출의 묘를 발휘한다. Taron Egerton이 곡이 진행될수록 상승하는 역량을 발휘하는 연기와 가창력은 단순히 Sir Elton John을 모사하는 것을 넘어 극 안에서의 독립적인 생명력을 발휘해 한 인물에 대한 설득력을 배가시킨다. ① 청년 Elton과 소년 Reginald Dwight(Elton의 본명)이 한 화면 안에서 같은 곡을 듀오로 부르며, 가부장제에 지속적인 억압과 방관으로 소년기를 훼손한 상처를 되짚고 극복하기 위한 몸부림을 친다. ② Elton의 평생 음악 지우인 Bernie Taupin을 맡은 Jamie Bell과 Taron은 공전의 걸작 싱글 「Goodbye Yellow Brick Road」(1973)를 극 내내 2,3회 교대하며 각자의 목소리와 톤을 빌어 따로 부른다. ③ 이렇듯 극 중 실종 인물들의 각자의 사정, 주인공의 주된 인생 대목마다의 사건들이 조우해 주요 넘버들은 편곡되고 극적 변주를 보여준다. 일종의 표제곡 「Rocket Man」(1972)에 이르면 주인공의 고뇌와 내적 환상이 교차하며 급기야 인물이 로켓의 상태로 대기권을 돌파하는 CG가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다소 아이러니하게 이런 장치들은 약물남용으로 망가진 신체와 정신을 극복해야 하는 서사의 과제와 별개로 그 자체가 약물중독의 환각을 최대한 극대화한 비주얼의 풍경과 닮아진다. 아무튼 이런 흐름 안에서 힘없는 성 안의 왕 노릇(친부는 그의 성취와 위치를 결코 인정하지 않는다)이나 폭력성을 제어하지 못하는 폭군의 노릇(하이에나 같은 매니지먼트에 대해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결국 패배한다)을 모두 소화해야 하는 배우의 역량은 빛을 발휘하고, 비주얼의 야심 못지않게 사운드의 세공에 힘을 불어넣은 연출의 수훈은 《보헤미안 랩소디》 등의 작품의 성과를 평이한 수준으로 조정하게 한다. 《로켓맨》엔 자신의 인생을 극화의 형태로 전시하려는 한 현역 창작자의 야심과 그에 의욕적인 동의와 힘을 불어넣은 연출자와 연기자의 야심이 서려있다. 온당히 대접받아야 할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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