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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통리뷰 #16] 스위트피 『거절하지 못 할 제안』 : 잊어서는 안될

스위트피 『거절하지 못할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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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정보
나는 이 앨범을 두 가지 키워드로 바라보려 한다. 하나는 대부의 대사를 인용한 ‘거절하지 못할 제안’이라는 표제이고, 다른 하나는 오랫동안 인디음악에서 논란이 되어 왔던 ‘아마추어리즘’이라는 차가운 감자다.


거절하지 못할 제안

영화 대부와 스위트피는 어울리지 않는다. 대부는 유장하고 김민규는 섬세하다. 전자는 서사시고 후자는 서정시다. 이 어울리지 않는 조합은 전적으로 김민규 자신의 페르소나로서 차용한 것이다. 이례적인 짙은 스모키 화장도 그와 한통속이다. 우리가 섬세한 서정이라고 생각하는 김민규의 내면엔 뭔가 시커먼 느와르의 욕망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살다보면 인간은 겉과 속이 다른 종족이라는 사실을 깨달게 된다. 살인마의 겉모양은 종종 이웃집 소년소녀의 얼굴을 하고 있고, 못생긴 곱추 콰지모토는 에스메랄다를 위해 헌신적인 아리아를 부른다. 거기까지 가지 않더라도 우리의 욕망은 끊임없이 금지된 것을 원하고 터무니없는 모반을 향해 나아감을 알 수 있다. 나는 이 앨범에서 서정적인 김민규의 알 수 없는 검은 내면을 보았다.

내 주장을 증명하는 트랙은 「사진 속의 우리」다. 이별에 대한 묘한 이중성을 간증하는 곡인데 따뜻하고 온화한 스위트피가 아니라 고독하고 불안한 내면을 독백한다. 「가장 어두운 밤의 위로」 뒷부분에 자리 잡은 후주도 비슷한 느낌인데, 영롱한 소리를 지루하게 반복함으로써 일종의 전복을 꾀하고 있다. 「은하수」에서 정지찬의 시타를 중심으로 내세운 것도 스위트피의 내재된 느와르가 드러나는 부분이다.

물론 「인어의 꿈」이나 「데자뷰」등의 트랙들에서 밝고 맑은 소년같은 스위트피를 만날 수 있고, 그런 트랙들이 훨씬 더 중요하게 자리 잡고 있지만 이 앨범에서 이야기할만한 것은 전작의 ‘지속’이 아니라 이전과 다른 ‘변화’에 있다. 변화를 설명해야내야만 하는 앨범이다.

앨범 전반에 걸친 변화는 미숙하다. 「하루」는 애니메이션 《시간을 달리는 소녀》(2006)의 초보적인 감상문으로 들리고 「안타까운 마음」과 「떠나가지마」에서 캐스커의 참여는 결과적으로 별반 도드라지지 않았다. 즉, 느와르의 욕망을 드러내고자 했으되 현실과 섞여 이것도 저것도 아니게 희미해져 버리고 만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잘못 짚은 게 아닐까? “거절하지 못할 제안”이란 영화 대부의 느와르가 아니라 다른 어떤 것일까?


잘 포장된 아마추어리즘

우선 해명부터 해야겠다. 아마추어리즘이라고 해서 서툴거나 질이 낮은 음악을 가리키지는 않는다고 말이다. 20세기 모더니즘 예술론에서 아마추어리즘은 견고한 프로페셔널들의 성벽을 허물고 창조적인 영감을 불어 넣는 에너지였다. 그러나 종종 오해를 낳기도 한다. 특히 이 말은 델리스파이스 출신의 김민규에게는 쓰지 않는 것이 좋다. 서툴다는 의미의 아마추어리즘으로 그들을 규정한 어느 음악평론가와 논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음악평론가가 틀렸다는 것은 이미 오래 전에 증명되었다. 델리 스파이스는 이제 모던 록의 대부쯤으로 평가받고 있으니 말이다.

나름대로 변화의 태가 오밀조밀한 이 앨범은 하지만 “거절하지 못할 제안”이라는 촌철살인의 표제에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내가 본 느와르의 감성은 진짜 느와르 밴드들에 비하면 깊은 지하실과 밝은 테라스 정도로 차이가 지니 말이다. 사실 이번 앨범은 잘 정리된 사운드의 미덕을 제외하고는 음악적으로 별로 두드러진 특징을 찾아내기 힘들다. 밴드 스타일로 보여줄 수 있는 팝은 이미 델리 스파이스에서 많이 해 왔던 작업이었고 이 정도의 아이디어는 다른 밴드들에게서도 들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스위트피가 자신 있게 말하는 “거절하지 못할 제안”이 더욱 궁금해진다.

아마도 그것은 사운드의 실험이 아니라 인디에서 팝으로 변화하는 김민규를 둘러싼, 아니 더 나아가 한국 대중음악계에 관한 일종의 지각 변동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델리스파이스와 김민규, 스위트피는 오랫동안 ‘인디’라는 이름으로 불려졌다. PC통신을 통해 음악을 시작했고 아티스트의 창조성이 보장 받지 못하는 환경 속에서 꿋꿋이 독립 체제를 유지하며 한국 인디 10여년을 이끌어 온 인물이었다. 그러나 지금 스위트피의 위상은 더 이상 인디라는 단어로 설명하기 힘들어졌다. 너무 다른 의미들이 한 데 섞여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금의 스위트피는 80년대와 90년대 한국 팝의 감수성을 계승하는 21세기적 팝의 흐름으로 평가하는 것이 더 합당하다.

그렇게 볼 때, “거절하지 못할 제안”이란 주류와 언더, 프로와 아마추어의 구분이 사라진 대중음악계에 던지는 달뜬 출사표로 읽힌다.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상황은 그렇다. 이젠 주류의 방송 시스템에 속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지평을 넓힐 수 있다는 자신감이 보인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느와르의 욕망과 화사한 현실이 구분되지 않고 자연스럽게 섞여 있는 이 앨범은 변절하지 않고도 대중성을 획득할 수 있는 시기가 도래하고 있다는 반증? 어떤 희망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토이, 캐스커, 정지찬, 슬로우준, 윈디시티의 김반장, 더멜로디의 타루, 스웨터의 신세철, 뜨거운감자의 하세가와 요헤이(長谷川陽平), 조윤정 등이 참여한 세션 리스트가 중요하다. 이들의 면면을 보면 스위트피가 가지고 있는 인디에서 팝으로의 위상을 공유하고 있는 인물들이다. 우리는 더 이상 이들을 인디, 혹은 초보적이라는 의미의 아마추어리즘으로 평가할 수 없다. 음악적인 면에서는 더할 나위 없고 대중적인 반향에서도 프로페셔널의 위치에 오르고 있는 인물들이다. 그러나 명심해야 할 것은 여전히 창조적인 영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의미의 아마추어리즘을 간직하고 있는 인물들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예전에 ‘인디’라 불리던 가치이며 결코 잊어버려서는 안 될 본질적인 것이다. 음악을 듣는 사람도,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도 잊어서는 안 될 가치 말이다.


소년에서 아저씨로

돌연 『달에서의 9년』(1999)으로 돌아가 보자. ‘당신이 왕자님으로 모셨었던 그 누군가가 정신병자에다가 사기꾼임을 알게 된 순간’ 말이다. 스위트피는 천진난만하게 그 순간 소년에서 아저씨가 되었다고 진술한다. 아, 이제 스위트피는 진짜 아저씨가 된 것일까? 이 번 세 번째 앨범에서는 소년에서 아저씨로 타락해가는 달뜬 처연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비록 주류에서는 창조성을 인정받고 세련된 대중음악의 지위를 얻을지 몰라도, 오랜 기간 맨땅에 헤딩하며 가꿔온 진짜 인디의 소중한 아마추어리즘은 잃어버린 게 아닌가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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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여. 스위트피의 공연을 보고

발렌타인데이가 낀 지난 주말 삼성동 백암아트홀에서는 스위트피의 세 번째 앨범 발매 기념 공연이 열렸다. 차마 발렌타인데이에 혼자갈 수 없어 다음 날 극장을 찾았다. 운이 좋게도 그 날은 토이가 게스트로 나온 날이었다. 토이는 뛰어난 유머감각으로 좌중을 휘어잡았는데 웃음의 대상으로 희생된 것은 김민규의 짙은 스모키 화장이었다.

스위트피 김민규는 공연 시작부터 시종일관 눈가에 검은 새도우를 한 채로 공연을 진행했다. 델리스파이스 공연에서도 느꼈던 것이지만 그는 참 수줍은 사람이다. 성실하고 말없는 A형(실제 김민규의 혈액형은 모른다) 남자의 전형이랄까? 별 말이 없지만 신뢰가 느껴지는 그런 사람 말이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검은 눈화장 보다 짙은 애정이 배어 있었다. 그래서 눈가의 검은 느와르(?)가 더욱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우리는 종종 델리 스파이스의 노래에서 상식을 배반하는 가사, 거친 기타리프를 김민규의 작품으로 들어왔는데 공연을 보면서 저 수줍은 사람 내면에 끓어오르고 있는 에너지를 확인했다. 그 내면은 결코 광폭하게 발산되지 않는다. 그것은 상상력의 모습을 하고 나타난다. 위에 리뷰에서 인용한 「오! 나의 공주님」 (1999) 가사나 「키치조지의 검은 고양이」(2003)의 역설적 감수성같은 것 말이다.

마지막 곡으로 「고양이」 리메이크를 들려주었는데, 그때 나는 무릎을 쳤다. 스위트피는 김광석의 토로, 김민기의 지성이 아닌 시인과촌장의 아이러니를 물려받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사춘기 소년이 바라보는 외부세계이며, 복잡한 내면이 충돌할 때 나오는 우중충함을 가볍게 흩어 버리는 한없이 가벼운 이미지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스위트피의 느와르(?)는 도드라지지 않는다. 느와르의 내재율이랄까? 짙은 눈화장으로 가면을 써보려고 하지만 스위트피는 그러한 ‘쇼’가 어울리지 않는다. 충실히 ‘쇼’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 내면이 낱낱이 보이니 말이다. 스위트피 공연의 매력은 드러난 쇼가 아니라 순간순간, 잠깐씩 느껴지는 역설의 상상력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믿음직스럽다.

공연 전반에 걸쳐 불려진 세 번째 앨범의 수록곡들은 잘 짜여진 현악 섹션에 의해서 앨범보다 한층 빛이 났다. 팔짱을 끼고 바라보면 작곡의 결들에 아쉬움을 가지게 되지만 풍성한 현악이 가벼운 몰핀처럼 피부에 느껴진다. 전체적으로 만족스러운 공연이었다. 역시 「Kiss Kiss」(2004)나 「오! 나의 공주님」같은 옛날 곡에 애착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나보다. 그 곡들에서 현악 세션도 좀 더 도드라지게 들리더라.

결국 공연의 믿음은 밀도 있는 연주다. 좋은 시설과 좋은 장비, 좋은 사람과 오랜 연습이 있어야만 보여줄 수 있는 공연을 스위트피는 하고 있었다. 클럽들에서 흘러 나오는 날것의 공연도 매력적이지만 연주와 태도에 신뢰가 가는 대중음악 공연도 분명히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400석 규모의 중극장은 지명도 있는 스타가수에게도 버거운 장소다. 티켓 판매 여부를 떠나서 언제나 믿음을 주는 공연을 하는 아티스트가 있다는 것이 소중하다는 사실을 깨달고 돌아왔다.

Credit

[Staff]
Recorded by 슬로우쥰 & 스위트피
Mixed by 이소림 except 안타까운 마음, 떠나가지마 by 캐스커
Mastered by Yuka Koizumi (Orange)

Track List

  • No
    곡명
    작사
    작곡
    편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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