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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리티 리포트 vol.3] 팝송이었으나 자족의 울타리에 갇힌......

권혁진 『날 울게한 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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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정보
장르

간단한 퀴즈로 시작하자. 92년에서 94년까지 하나뮤직 1기가 제작한 음반 중 가장 많은 판매고를 올린 것은 무엇일까? 그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위의 명단을 보고 금새 알아맞출 수 있을 거다. 그렇다. 한동준 2집 『처음 받은 느낌으로』(1993) 이다.「너를 사랑해」의 인기가 상당했었다. 잠깐, 위에 있는 저 명단은 도대체 뭐냐구? 그 시절 하나뮤직의 음반을 몇 장 구매해 본 사람이라면 금새 기억할 수 있을 거다. 그렇다. 당시 하나뮤직은 음반 안에다 '하나음악회원 가입 신청서' 라는 쪽지를 낑궈 넣었었다. 회원증 발급해주고 회보도 받아볼 수 있고 어쩌구 저쩌구...... 오른쪽에 있는 '하나음악 앨범 소개'는 그 신청서 작성란 뒷면에 적혀있는, 그러니까 간략한 카달로그인 것이다. 아마 당시 필자처럼 하나뮤직의 열혈 지지자였던 사람이라면 이 카달로그를 정보 삼아 대부분의 하나뮤직 발매작들을 수집했으리라. 오늘 소개할 권혁진의 앨범도, 필자는 이 카달로그 덕에 손에 넣을 수 있었다.

필자의 기억으론 권혁진의 앨범이 발매되었을 때, 라디오를 진행하고 있던 '화이트'의 유영석이 타이틀곡「날 울게한 그대」를 여러 번 틀어줬던 것 같다. 한동준씨가 작곡한 곡이라면서, 곡 좋다면서.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사랑했지만」(1991), 「너를 사랑해」의 작곡가 한동준의 이름도 이 앨범에선 빛을 발하지 못했다. 물론「사랑했지만」의 파괴력에 비하면「날 울게한 그대」는 상대적으로 잔잔한 노래라서, 흥행 보증수표로선 좀 부족한 면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또 한편으론, 이 앨범의 흥행실패는 그닥 아쉬운 것이 아니었다. 왜냐구? 이 역시 간단한 퀴즈다. 바로 하나뮤직에서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나뮤직의 열혈 지지자였건만, 필자에게 하나뮤직 앨범들의 줄줄이 흥행실패는 당시 매우 자연스런 풍경이었던 것이다. 별로 안타깝지가 않았다. 몇몇 친한 친구들에게만 들려주던, 그렇게 삼삼오오의 울타리 안에서만 공유되던, 그렇게 쑥덕쑥덕 내향적으로만 열렬히 사모하던 음악...... 90년대 초반의 하나뮤직은 그런 뮤직이었다.   

왜 그랬을까? 음악이 올드해서? 음악이 어려워서? 뭐 하나뮤직의 리더였던 조동진을 떠올린다면 '올드'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건 사실이다. 게다가 김광민 2집 『Shadow Of The Moon』(1993) 과 이병우 3집 『생각없는 생각』(1993) 의 연주음악, 그리고 낯선 사람들의 1집 『낯선 사람들』(1993) 과 정혜선 독집 『정혜선』(1992) 의 아우라를 생각하면 '어렵다'라는 단어도 썩 어울린다. 하지만 분명히 말하건대 '올드'와 '어렵다'가 하나뮤직의 전부는 아니었다. 한동준 2집의 예외적 히트를 배제하더라도 하나뮤직의 뮤직은 상당한 팝적 감수성을 지니고 있었다. 아마 정원영 1집 『가버린 날들』(1993)과 토이 1집 『내 마음을 들여다봐』(1994)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금새 수긍할 것이다. 하나 옴니버스 1~3집은 또 어떤가! 올드한 김민기와 조동진에서부터 후레쉬한 김현철과 조규찬 등이 적절히 섞여있고, 상당히 세련된 편곡과 앨번 디자인으로 무장하고 있어 10대들에게도 어느 정도 어필했던 시리즈였다. 하나 옴니버스 1집 A면 첫 곡이 뭔지 아시는가? 바로 권혁진의「이대로 영원히」(1992) 다. 당시 별다른 정보가 없던 필자는 누가 들어도 세련된 팝송이었던「이대로 영원히」를 들으며 권혁진을 20대 초반의 싱싱한 뮤지션으로 상상했었다. 그리곤 얼마 지나지 않아 권혁진의 독집을 손에 넣었는데, 부클릿에 그가 이런 글귀를 적어놓은 게 아닌가. "'너도 판이 나오는구나!' 껄껄대던 친구 동익이 어쩌구 저쩌구..." 그렇다. 첫 앨범을 냈을 때, 권혁진은 30대 중반이었다.

하지만 그런 나이 따윈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쨌거나 권혁진의 앨범은 팝이었다. 이건 당장「그대만이」를 들어보면 판명난다. 전주와 간주와 후주에 똑같이 등장하는 신시사이저 테마는 너무 영롱하고 산뜻하여 누가 듣더라도 대번에 빠져들고 만다. 얼마나 산뜻하고 팝적인지 평범한 농사꾼의 아내인 필자의 장모님마저 우연히 들으시곤 이 테마에 감동을 먹으셨드랬다. "거 듣기 좋네." 뿐만이 아니다. 버스(verse)는 The Beatles의 순수했던(?) 시절의 곡들마냥 매우 짧고, 후렴의 '그대만이 내 곁에 있어요~'는 말이 필요없는 팝송 훅(hook)이다. 어찌 들으면 너무 단순하고 쉬워서 유치하단 생각이 들 정도의 노래다. 이쯤에서 살짝 귀띔해주어야 할 것 같다. 이 노래의 작곡가가 더 클래식의 박용준이고 신시사이저의 테마 역시 그의 작품이라고. 그렇다. 권혁진의 앨범을 팝으로 만든 건, 사실 8할이 박용준의 활약 때문이다. 박인영이 곡을 쓴「누군가에게」를 보자. 멜로디는 포크적인데, 편곡자 박용준은 오로지 건반으로만 곡을 뒤덮어 완연한 팝송으로 만들어버렸다. 이 곡의 건반 테마는, 뭐 거의 뉴에이지 수준이다. 물론 지금까지 얘기한 2곡을 빼면 나머지는 모두 조동익이 편곡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곡이 그 자체로 팝송이어서 편곡도 철저히 이에 맞춰져있다. 조동익은 어김없이 박용준을 중용했고 그의 연주는 탄탄하게 밑을 받쳐주는 조동익의 베이스, 김영석의 드럼 위에서 곡의 분위기를 실질적으로 장악하고 있다. 그럼 나머지 2할은 누구 덕? 당연히 당사자 권혁진이다. 그의 목소리는 전형적인 허스키인데 뭐랄까...... 쉰소리를 제거한 임재범에 객기를 제거한 김현식을 더한 거라고나 할까? 권혁진의 허스키는 텁텁이 아니라 풋풋에 가깝다. 30대 중반의 아저씨인데도 불구하고 그는 다소 낯 간지러운 팝 멜로디를 무척이나 잘 소화해냈다.

아무튼 그래서, 결론은 이 앨범이 순수에 가까운 팝 앨범이라는 건가? 당연한 변명이겠지만 100%는 아니다. 어쿠스틱 기타가 주도하는「바람부는 길」은 작곡자 조동진의 포스가 온전히 묻어나오는 포크 명곡이고, 때문에 이 곡에서만큼은 권혁진의 목소리도 포스에 걸맞게 다소 탁하다. 또한 팝과 포크의 감성을 반씩 섞어놓은 듯한 조동익의 곡「우리함께」는 이소라의 존재가 유독 두드러지는 낯선사람들의 백 보컬 때문에 팝송에서 한발치 물러선 느낌이다. 뭐 굳이 또 거론하자면「별빛처럼 먼 그대」의 가사를 지목할 수 있다. 곡과 가사 모두 최성원의 것인데, 멜로디의 죽여주는 팝적 센스에 비한다면 가사는 참으로 고즈넉하다. "지난일들 모두 다 아름답다 말하지 내게도 지워지지 않는건 별빛처럼 먼 그대~" 하지만 이런 것들 모두가 앨범에서 이질적으로 다가오진 않는다. 이런 것들이 박용준적인(?) 센스와 훌륭히 조화를 이루고 있다. 아무튼 그래서, 순수는 아니더라도, 권혁진의 이 앨범은 분명 팝송 앨범이다. 왼쪽에 보이는 저 칼라풀한 테잎처럼 듣기 좋고 산뜻한 팝송.

자, 그럼 이제 다시 앞에서 던진 질문들로 돌아와 보자. 왜 이 앨범은 흥행 실패했을까? 왜 몇몇 열혈 지지자들 사이에서만 내향적으로 공유되었을까? 뭐 일단 첫번째 질문은...... 송구스럽게도 서태지 얘기를 꺼낼 수밖에 없다. 아마 저번 2탄에서도 서태지가 박선주 흥행실패 원인의 일부로 지목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권혁진과 박선주 사이엔 그 자체적으로 명백히 차이가 있다. 박선주 2집은 어정쩡해서 실패한 반면, 권혁진 1집은 조화로웠는데도 실패했다. 그렇다. 바로 이 지점이 두 번째 질문의 답으로 넘어가는 대목이다. 동아기획은,『90년대를 빛낸 명반 50』의 표현을 빌자면, '뉴웨이브'라 일컬어도 좋을 김현철과 푸른하늘 등의 새단장으로 잠시나마 명백을 이어갈 수 있었지만, 하나뮤직은 쉬워봤자 '그냥 팝송'이었기 때문에 대중성을 확보하지 못한 것이 아닐까? 권혁진의 앨범을 들으면 분명 대중적이지만 당시의 세상은 하나뮤직식 대중성과는 다른, 또 다른 대중성을 선호하였던 것이 아닐까? 더군다나 공교롭게도 하나뮤직 카달로그 내에서도 대중적이었던 권혁진과 토이와 정원영은 대중적이지 않았던 조동익 독집과 낯선사람들에 비해 낮게 평가당했다. 하나뮤직을 열혈로 지지하는 사람들도 실상은 '좀 더 어려운' 것들을 자신들의 뽀대로 들이밀었던 것이다. '뉴웨이브'의 광풍에도 아랑곳 않는 고집스런 뮤지션들을 들먹이며.   

그러나 조동진-조동익 형제가 하나뮤직을 따로 차린 이유는 도달하고자 했던 어떤 음악적 결과보다는, 단지 구애받지 않고 음악을 하고 싶었던 소박한 욕구의 측면이 더 강했다. 이건 저 위의 카달로그만 봐도 금새 판명난다. 딱 한 색깔만 있는 게 아니다. 조동익이 안치환 4집을 하드록으로 꾸미고 장필순 5집을 모던록으로, 6집은 일렉트로니카로 꾸민 것도 그렇다. 그러니까 하나뮤직의 의의는 특정 앨범 몇몇의 완성도에만 있는 게 아니라 구애받지 않고 음악 한다는, 모종의 인디 마인드라 할 만한 큰 틀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인디 마인드 속에는 당연히 팝송도 들어있다. 지금 홍대의 인디팝을 예쁘게 들어주는 우리라면 과거 하나뮤직의 팝송 역시 예쁘게 들어줄 수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을 이어오다보니 요런 생각이 또 든다. 당시 권혁진 앨범의 흥행실패는 다른 하나뮤직 앨범들과 마찬가지로 예견된 것이었지만 최소한 '좀 더 어려운' 것들처럼 자존심 곧추세울 필요까지는, 그저 내향적이기만 할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하는 생각. 장모님이 오케이하셨다면 장인어른께도 한 번 권해볼 것을. 이게 바로 하나뮤직이 도달한 그들만의 팝송이라 소개하며, 그냥 듣기 좋은 팝송이라고 소개할 것을. 왠지 모를 하나뮤직의 폐쇄성에 필자가 일조한 건 아닌지, 울타리 걸어잠그는데 도움을 준 건 아닌지 모르겠다. 조동익과의 인터뷰 도중 평론가 신현준씨가 "조동익님은 대중적이어야 될 사람인데 컬트가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라는 멘트를 날렸는데, 이 멘트가 드러내는 안타까움에 가장 부합하는 앨범이 바로 권혁진의 이 앨범이 아닐까 한다.      



★★★★

 

Credit


●Track list 

01. 날 울게한 그대

02. 그대만이

03. 우리함께

04. 별빛처럼 먼 그대

05. 바람부는 길

06. 이대로 영원히

07. 너를 위한 노래

08. 비

09. 누군가에게

10. 날 울게한 그대(Instrument)





●앨범정보

Executive produced by 하나음악

Produced by 조원익

Arranged by 조동익, 박용준

Engineered & Mixed at Now studio, Hana studio

Photographs by 김중만

Designed by 정희정

Track List

  • No
    곡명
    작사
    작곡
    편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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