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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통리뷰 #07] 엄정화 『Prestige』 : 뻔한 ‘그녀’에서 진짜 ‘엄정화’로

엄정화 『Prestige』
592 /
음악 정보
발표시기 2006.10
레이블 트라이펙타
유통사 소니비엠지

“그저 가수 엄정화가 아닌 뮤지션 엄정화로 거듭나기에 많은 이들이 지켜봐 주고 응원해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음… 그녀의 이번 9집 보도자료에 적힌 이 글귀. 별로 신뢰가 가질 않았다. 『Self Control』(2004)에선 뭐 안 그랬나? 음악성과 대중성의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답시고 더블 앨범으로 기획했었는데……. 정재형이 프로듀싱한 음악성 있는 반쪽 '셀프 사이드(Self Side)'는 완전 정재형 맘대로였다. 엄정화의 목소리는 대부분 이펙트로 왜곡되고 비트는 무진장 쿵쾅거리고. 도대체 ‘대중가수’ 엄정화를 위한 배려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건 그냥 일렉트로니카 모음집이지 엄정화의 음악이 아니었다. 윤상이 곡을 쓴 「지금도 널 바라보며」(2004) 한 곡만이 그녀의 예쁜 목소리를 잘 살린 중용의 가요 트랙이었다. 그 셀프 사이드엔 롤러코스터도 있었다. 조원선이 곡을 쓰고 지누가 편곡한 「Union Of The Snake」란 곡인데, 듀엣을 자처한 조원선의 포스가 너무 커서 역시 엄정화는 왕따에 지나지 않았다. 때문에 이번 9집의 프로듀서가 지누라는 사실에도 필자는 그닥 마음이 동하질 않았다.

그런데 이게 뭐얌. 웬걸. 예상을 뒤엎고 지누의 프로듀싱이 상당히 흡족한 결과물을 들려주는 것이 아닌가! 그녀도 살고 음악도 살고. 두 마리 토끼 다 잡고 있지 않은가! 이거, 한국의 마돈나가 되고자 하는 그녀의 숙원이 드디어 15년 만에 이뤄지는 건가? 어디 한 번 세 부분으로 나눠 살펴보자.


지누의 곡들

뭐니 뭐니 해도 『Prestige』의 엑기스는 지누가 작곡한 맨 앞의 두 곡 「Friday Night」과 「Shining Star」다. 롤러코스터에선 베이스만 치고 프로그래밍도 드문드문 맡아서 하던 지누가 리듬 프로그래밍과 기타와 베이스를 몽땅 혼자서 망라했는데, 뭐랄까… 롤러코스터에서 풀지 못한 훵키의 숙원을 여기서 풀었다고나 할까?

왜, 롤러코스터를 두고 누구는 애시드(acid) 밴드라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그렇게 불리기엔 조금 차갑고 조금 우울하게 가라앉았던 것이 사실이었다. 조원선의 목소리가 특히 그랬고. 하지만 엄정화를 만나선 그야말로 제대로 달궈준다. 뚱땅거리는 베이스와 깔짝거리는 기타의 조합은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게다가! 이런 훵키 그루브의 중독성이 엄정화의 컨셉과 딱 맞아떨어진다. "오늘도 난 달린다/ 은빛 자동차를 타고/ 섹시하게 차려입고", "매일아침 일어나/ 웃으며 거울을 보자/ 자유롭고 당당하게" 라고 재잘대는 그녀의 낭랑한 목소리는 영낙없는 새침떼기 명랑숙녀다. 그래, 이게 맞다. 흐느적거리고 뇌쇄적인 요부(妖婦)의 이미지보다, 엄정화에겐 명랑숙녀가 맞다.

이번 앨범의 마지막 트랙 「사랑해 사랑해」는 엄정화의 친구 및 선후배가 그녀의 자동응답기에 남긴 이런저런 재미난 멘트들을 모아놓은 것인데, 멘트가 모두 끝난 뒤 이어지는 지누의 발랄한 반주와 ‘나나나나’를 흥얼거리는 그녀의 목소리가 퍽이나 조화스럽다. 이처럼「Friday Night」과 「Shining Star」는 엄정화의 실상에 보다 가깝단 인상을 준다. 그거 아시는가. 이렇게 엄정화스러운 가사를 쓴 게 바로 프로듀서 지누라는 사실을. 아무튼 「Shining Star」는 어느 정도 충격이다. 엄정화가 이런 음악을 만날 줄은 몰랐다.

근데 지누의 나머지 곡들 중에서 「Gamer」, 「거칠게.. 로맨틱하게」, 「바람의 노래」요 3곡은 좀 별로였다. 「Gamer」는 앞의 두 곡에 비해 함량미달이고, 「거칠게.. 로맨틱하게」는 지누의 반주가 너무 나선다는 느낌을 준다. 보컬라인도 좀 억지스럽고. 「바람의 노래」는 롤러코스터 분위기가 너무 많이 난다. 「1996년 10월 16일 날씨맑음」은 좋았다. 리듬을 심플하게 짜고 기타에 에코를 걸어 앞뒤로 포진한 일렉트로닉 팝 넘버들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지누가 프로듀싱 잘했다.


작곡가의 곡들

방시혁이 맡은 「Come 2 me」는 그래도 여전히 엄정화를 뇌쇄로 기억하고 소비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맞춤형 트랙이다. 안무 짜기 좋은 최근의 팝 트렌드를 고스란히 가져왔다. 솔직히 필자는 좀 심심하다. 김도현이 작곡한 「탐」은 무난한 클럽용 유로-일렉트로니카다. 엄정화의 목소리에 이팩트를 걸어 8집의 악몽이 살짝 떠오르기도 했다.

방시혁의 또 다른 곡 「Innocence」는 훌륭한 발라드 트랙이다. 브릿지도 성의 있게 만들었고 무엇보다 막판의 기타 연주가 센스 만점이다. 요렇게 깔짝거려 달라고 지누가 요구한 건가? 사운드에도 공간감을 충분히 넣어달라고 한 건가? 그랬다면 이거, 프로듀싱 정말로 잘한 거다. 유일한 발라드인데도 앨범의 전체적인 흐름과 동떨어진 느낌을 주지 않으니까 말이다.


일렉트로닉 팝 스타들의 곡들

앨범 후반부에 캐스커의 「Dance With Me」, 더블유(Where the story ends)의 「Ticket To The Moon」, 페퍼톤스의 「여왕 폐하의 순정(純情)」이 연달아 포진해있다. 3곡 모두 곡과 가사에서 해당 뮤지션의 개성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완성도가 뛰어나서 해당 뮤지션의 팬들에게도 충분한 매력을 발산할 트랙들이다. 특히나 「Ticket To The Moon」과 「여왕 폐하의 순정(純情)」은 엄정화의 예쁜 목소리가 십분 발휘되어 더없이 상큼 발랄하다. 그녀의 목소리가 예쁘다는 것에 목숨 거는 사람이라면 지누의 맨 앞 2곡보다 요 2곡이 더 좋다고 할 것이다. 뭐 엄정화, 그냥 페퍼톤스 보컬로 눌러 앉아도 될 것 같다. 더블유의 다음 앨범에 꼭 객원 보컬로 참여할 것만 같다.

생각해 보니, 일렉트로닉 팝을 선택한 건 참으로 잘한 짓이다. 앞서 얘기한 그녀의 실상과도 어울리고 장르 자체로 이미 음악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껴안고 있으니 말이다. 캐스커가 누구고 더블유가 누군지 모르는 엄정화의 기존 팬들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 이 점은 참 중요하다. 「Festival」(1999)을 좋아하는 사람도 이번 『Prestige』를 좋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고 보면, 대중성과 음악성을 각각 따로 잡겠다고 더블 앨범을 만든 8집은 정말 어이없는 실책이었던 셈이다.

아 참, 그건 그렇고 더블유의 「Ticket To The Moon」은 베이스와 기타가 나름 그루비하여 전반부에 포진한 지누의 곡들과도 하나의 흐름을 잇고 있다. 이것도 지누의 프로듀싱 내공인가? 하긴 더블유는 원래 좀 그런 성향이다. 지누와 더블유의 배영준이 각별한 사이라는 게 내공이라면 내공이다, 쩝!

이렇게 세 부분으로 나눠 살펴보건대, 이번 엄정화의 『Prestige』는 그녀의 최고작이자 한국 주류 여가수의 몇 안 되는 수작 앨범 중 하나다. 「Come 2 Me」는 엄정화의 전략 상 빼기 좀 그렇고…, 좀 별로였던 지누의 몇 곡만 아니었다면 별 넷 받을 뻔했다. 그래도 어쨌거나 지누는 프로듀싱 참 잘했다. 아하, 그녀가 마돈나가 됐는지 안 됐는지 그 얘길 안 했다. 그녀가 작곡에도 참여하고 음악적으로 욕심을 부린 건 마돈나지만, 분위기 자체로만 본다면 그건 아닌 것 같다. 앨범의 주요한 무드인 생기발랄을 두고 보건대, 엄정화는 이제야 엄정화가 됐다. 「Come 2 Me」가 여전히 발목을 잡고는 있지만 주류의 넘쳐나는 섹시 여가수들, 그 실체 없는 이미지에서 엄정화는 이제 막 빠져나왔다. 10집에서 더 확실한 엄정화가 되길 기대해본다.
 

Credit

[Staff]
Executive Producer : 전덕중
Produced : Jinu
Recording studio : Fit, Velvet, Xanadu
Recording Engineer : Jinu, 김석민, 이강민
Mixing Engineer : Jinu, 박혁, 박병준, 이용섭, 김한구, 이정형, 이면숙
Mixing Studio : Fit, T studio, Fluxus, Dream factory
Mastering Studio : Sonic Korea
Mastering Engineer : 최효영
Management : 채종주, 김정민, 이민재, 이종삼(Trifecta entertainment)
Music Video : 백종열(617)
Art Directed & Design : 백종열, 공병각(617)

Track List

  • No
    곡명
    작사
    작곡
    편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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