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제인간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외계인 삐에로》(1988)였다. 50년대까지 발명된 온갖 아날로그 특수효과 기법을, 외계인들이 벌이는 각종 살인-파괴 행위 묘사에 동원해서 갖고 노는 80년대 후반의 컬트 영화 말이다. (2024년에 게임으로도 출시 예정이기도 하다.) 이처럼 30년 주기로 과거의 실험이 좀 더 팝에 가까운 복고 조류와 함께 새로 대두하는 현상은 20세기 후반과 21세기 초반 대중문화의 기본값처럼 자리 잡았다.

『12가지 말들』도 60년대 사이키델릭-아트록과 하드록/개러지 록에 영향을 받은 (트렌드와도 맞는) 90년대 익스페리멘털-인디록의 2020년대 리바이벌처럼 느껴지는데, 이는 사운드 면에서 빈티지와 현장감을 살린 녹음 방식 때문이기도 하고, 다이얼로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듯 툭툭 장면(scene)이 바뀌며 그 와중에 이격을 두기도 하는 파격의 탈구조 때문이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틱톡-릴스-쇼츠 시대를 반영한 게 아닐까 싶다.)

물론 60-90-2020년대는 음악을 둘러싼 환경이 다르고, 그래서 같은 장르라도 현재의 청중이 느끼는 정서와 그 정서의 울림을 깊이 있게 이끌어내는 방법론은 시대마다 조금씩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쩌면, 60,90년대가 앞선 시대(50,80년대)의 문화적 보수성을 사방팔방 뻗치는 에너지로 뚫고 나가보려는 시도를 통해 어떤 돌파구들을 일궈냈다는 공통점이 있듯, 2020년대 또한 다양한 실험을 통해 2010년대의 안정적 보수성을 깨부술 돌파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안정적인 Beatles나 AC/DC보다는 The Who나 Blue Oyster Cult처럼 마디마디마다 독특한 지문이 묻어 있는 봉제인간의 실험에 다른 밴드들보다 눈길이 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서두에서 꺼낸 《외계인 삐에로》의 아날로그 특수효과처럼) 컬트적인 인기를 끌 만한 테크닉과 이펙트가 각 곡에 난무하는데, 가사 또한 외계인(「12가지 말들」)에서 시작해 아기(「BABY」), 연인(「KISS」), 할머니((「꾸부렁 할머니」), 환자와 의사((「지난 이야기」) 등 다양한 화자 사이를 넘나들며, 특유의 위트와 분위기는 이어가되, 스킵 버튼을 누른 듯 장면을 휙휙 전환한다.

이렇게 글로 분석하면 이음매가 신경 쓰이고 난잡하게 들리지 않을까 싶겠지만, 정작 곡을 실제로 틀면 그 화려하고 유려한 손놀림에 빠져들어 몸이 먼저 반응한다. ‘꾸부렁’대고 ‘비틀’려 있으며 ‘밤의 달리기’처럼 어떤 지면에 발이 닿을지 모를 음악이라고, 글로 정리하면 불안하고 심란한 실험주의 음악을 떠올릴 테지만, 막상 봉제인간의 세 멤버가 연출하는 음악적 공간은 나쁨과 어두움과 공격성의 에너지를 초과하는 밝음과 몽실몽실함과 포근함이 구석구석 녹아 있어 웃게 된다. 그러면서도 곡의 뼈대와 근육과 살이 작곡-합주 당시의 풍경을 그대로 담고 있는데, 임파스토처럼 절묘한 질감과 강약의 속도감이 청자에게 온전히 전달된다. 크고 넓게 흠뻑 체험할수록 첫인상의 강렬함보다 섬세한 결에 더 감탄하게 되는 앨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