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Review

다시, ‘아이’에게

김민기 『김민기 1집』
868 /
음악 정보
발표시기 1971.10
Volume 1
장르 포크
유통사 대도레코드
(필자 註. 이 리뷰를 쓰기 위해 논문 「음반『김민기』(1971)에 대한 분석 연구」(2008) 중 악곡 분석 부분을 참고하였음을 밝힙니다. 논문의 저자이신 한윤영님께 감사의 말씀을 진심으로 전합니다.)


1.
「눈길(경음악)」은 언제 들어도 사랑스럽다. 기타가 휘파람이 엇갈리다 등장하는 복기호 악단의 연주는 소담스럽고 정겹다. 이 곡을 들을 때마다 나는 초롱초롱한 눈동자를 새삼스레 떠오른다. 세파에 휩쓸려도 끝내 감출 수 없는 눈동자가 떠오른다.


2.
앨범 초반을 살펴보자. A면은 「친구」가 연다. 죽은 친구를 향한 그리움이 장조 멜로디에 실린다. 그러나 그게 가볍지 않다. 보컬이나 멜로디가 곡의 기운을 지그시 누르기 때문이다. "검푸른 바닷가에 비가 내리면"의 가사가 거의 하나의 음으로만 이어진다. 그 단조로움이 장조의 기운을 지그시 누른다. 김민기는 바로 그 다음 가사인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물이요" 대목을 특유의 울먹이는 보컬로 처리한다. 곡의 각 파트는 이 두 개의 방식이 서로 교차한다.

그 덕분에 후렴구를 활기차게 들을 수 없다. "눈 앞에 떠오는 친구의 모습", "저 멀리 들리는 친구의 음성"은 아련하고, "흩날리는 꽃잎 위에 어른거리오"와 "달리는 기차바퀴가 대답하려나"는 구절은 슬픔과 근심이 그득하다. 장조 멜로디의 밝은 분위기는 역설적으로 이 곡의 슬픔을 더한다. 장조는 밝은 분위기의 노래에만 쓰인다는 고정관념을 세련된 방식으로 타파한다.

A면의 곡들은 그렇게 기쁨과 슬픔 사이를 뒤챈다. 불안하게나마 누군가가 손을 잡아주길 바라고(「아하, 누가 그렇게」), 한대수의 노래에서 이는 ‘바람’을 빌어 마음을 다 잡는다(「바람과 나」). 번안곡인 「저 부는 바람」에 이르러, 그는 아무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알지 못한 ‘바람’을 지켜본다. 그는 보고, 듣고, 아파한다.

「꽃 피우는 아이」는  「저 부는 바람」의 뉘앙스를 그대로 받는다. 단조 멜로디로 꽃을 피우려고 하지만 끝내 시들고 말았다는 가사를 싣는다. 그러나 그는 마침내 "누가 망쳤을까, 아가의 꽃밭/ 그 누가 다시 또 꽃 피우겠나"이라는 ‘의문’을 2절에 집어넣는다. 그러나 그게 급작스럽지 않다. 아이의 상황을 차분한 분위기로 솜씨 있게 그려낸 대목이 맥락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이내 "무궁화 꽃 피워 꽃밭 가득히/ 가난한 아이의 손길처럼"이라는 반복 어구로 ‘의문’을 힘겹게 틀어막는다. 아이를 위로하기 위해 무궁화를 키우고 싶지만, 자신은 그렇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넌지시 말한 것일까. 어쨌든 A면은 「친구」의 ‘이상한’ 슬픔이 「꽃 피우는 아이」의 온전한 슬픔으로 바뀌며 끝난다.


3.
B면은 「길」이 연다. 「아하, 누가 그렇게」나 「바람과 나」에서 나긋하게 연주하던 정성조 쿼텟은 이 곡에 이르러 보다 자유분방하게 연주한다. 정성조의 플루트 솔로 또한 훨씬 자유로운 연주를 선보이며 곡의 활기를 불어넣는다.

그 사이로 질문이 장조 멜로디의 힘찬 뉘앙스를 가득 품으며 행진한다. "여러 갈래 길" 중에서 하나만 있다고 누가 말하는가. 누가 그렇게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하는가. 화단을 망친 사람이 누구인지를 묻는 의문은 그렇게 길을 규정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묻는 질문으로 바뀌었다. 곡은 기어이 여러 갈래 길이 "다시 만날 길"이라고 당당하게 ‘선언’한다, 자유로운 플루트 솔로 멜로디가 노래의 멜로디 라인과 더불어 엇갈리는 형국을 선명히 드러내면서.

이어지는 「아침이슬」이나 「그날」은 양희은의 『고운 노래 모음 1집』(1971)에 있는 버전에 비해 조금 더 절제된 방식으로 이어진다. 거의 클래식에 가까운 편곡 덕분에 「아침이슬」 특유의 ‘돌파하는 후렴구’가 견실함을 얻고, 「그날」의 장조 멜로디는 묵시록 풍의 가사에 신실함을 얻는다. 두 곡은 「길」의 힘찬 에너지를 고스란히 받는다.

앨범은 그렇게 「종이연」에 다다른다. 「꽃 피우는 아이」에선 관찰자의 시점이었다면, 이 곡은 주인공의 시점으로 ‘아이’를 다룬다. 그는 집 나간 어머니와 "헬로 아저씨"사이에 낳은 - 그마저도 간접적으로 드러난다 - ‘아이’의 넋두리를 "라이-라이-라이-라이“로 일관하는 단조 멜로디와 가사를 붙인 장조 멜로디로 번갈아가며 노래했다. 그러나 「친구」의 변주와 다른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감정은 보다 역동적으로 드러나고, 사연은 보다 솔직하게 드러나서 가슴을 친다. 천진난만한 희망과 차마 못 다 헤아릴 슬픔을 악곡의 드라마틱한 구성과 솔직한 가사만으로도 넉넉히 그린다.

편곡 또한 비범하기 이를 데 없다. 피아노로 은은하게 조바꿈을 하는 대목만 놓고 보면 앞의 두 곡에서 견실함을 제대로 이어받은 듯 하다. 그러나 후반부에서 곡은 갑작스레 블루스 필을 가득 머금은 색소폰 솔로를 등장시킨다. ("철길 저편에 무슨 소리일까/ 하늘나라 올라갈 나팔소리인가"는 공간감을 강조한 김민기의 의도일 수 있겠지만, 기실 정성조의 색소폰 멜로디 라인을 칭하는 이야기이리라.) 바로 그 솔로 라인이 노래의 장조 멜로디와 쌉싸래하게 얽히는 그 순간이야말로 「종이연」의 정수라고 나는 생각한다. 마냥 울 수도, 마냥 웃을 수도 없는 이 앨범의 감흥이 생생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어느 한 쪽으로 재단할 수 없는 감흥. 이 느낌의 정체는 무엇인가. 무엇이 이 느낌을 창안했을까. 이 느낌을 느끼는 나는 누구인가.

박정희 정권은 이 곡의 온전한 제목인 「혼혈아」를 결국 빼앗았지만, 노래의 정수마저 기어이 빼앗지는 못했다. 앨범은 그렇게 「친구」의 슬픔과는 다른 이상한 희망 한 자락 (혹은 보다 넓은 차원의 슬픔)을 얼핏 보여주면서 「눈길」로 내달린다. 아이를 보다가 스스로 아이가 된 사내의 음반은 그렇게 끝났다.

4.
「꽃 피우는 아이」에서 "누가 망쳤을까 아가의 꽃밭"이라고 질문을 시작했을 때, 그의 목소리는 침착함을 잃고 감정을 드러낸다. 「종이연」의 마지막 부분에서 "종이연 날리자 하늘 끝까지"라고 노래할 때, 그의 목소리는 평정을 잃고 울먹거렸다. 아이가 된 그는 그렇게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 깊숙히 질문을 던졌다. 질문은 생생했기에 더욱 치명적이었다. 시대는 안간힘을 다해 그 질문을 틀어막았다. 금지곡 리스트를 비롯한 이 앨범의 여러 버전이 이런 점을 간접적으로나마 증명한다.

시대는 부끄러운 앨범을 냈다는 것에 쑥스러워 견딜 수 없어 했던 사람의 앨범을 기어이 전설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의 질문과, 그것을 던지는 자세만큼은 지금도 멈추지 않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냉소도, 타협도 없이 인간 본연의 조건을 어린이들 사이에서 찾는 그의 구도(求道)는 지금도 소진되지 않았다. 학전에서 그가 (그의 말마따나 "돈 안 되는") 어린이 뮤지컬에 매달리는 것을 볼 때마다 이 앨범의 ‘아이’를 생각한다. 아기자기한 노랫말의 「인형」(1993)도, 양희은의 동생 일기에서 본 「백구」도, 중앙정보부의 협박 속에 만든 「식구생각」(1992)도, 「천릿길」(1993)이나, 「작은 연못」(1993)도, 『노래일기 「엄마, 우리엄마」 · 노래극 『개똥이』 중에서』 (1987)도, 『아빠 얼굴 예쁘네요』(1987)도, 『김민기 4』(1993)에 실린 노래들도 함께 생각한다. 그 끈질긴 힘이 이 앨범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생각한다. 생각이 생각을 부르는 데도 몸은 한결 가볍고, 가슴께는 뜨듯하다.


 
 

Track List

  • No
    곡명
    작사
    작곡
    편곡
  • 1
    친구
    김민기
    김민기
    -
  • 2
    아하 누가 그렇게...
    김민기
    김민기
    -
  • 3
    바람과 나
    한대수
    한대수
    -
  • 4
    저 부는 바람
    김민기
    외국곡
    -
  • 5
    꽃 피우는 아이
    김민기
    김민기
    -
  • 6
    김민기
    김민기
    -
  • 7
    아침이슬
    김민기
    김민기
    -
  • 8
    그날
    김민기
    김민기
    -
  • 9
    종이연
    김민기
    김민기
    -
  • 10
    눈길 (경음악)
    -
    김민기
    -

Edi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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