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Review

우리가 지나온 숲은 이미 별들로 가득했다 

그림 (The 林) 『아침풍경』
548 /
음악 정보
발표시기 2002.10
Volume 1
장르 크로스오버
레이블 예당음향
유통사 3.14
공식사이트 [Click]

이 앨범의 유려한 아름다움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윤슬마냥 반짝거리며 빛나고 넘실댄다. 「은하수를 보던 날」에서 김남희가 선보이는 소담한 소금 소리는 섬세하게 짜인 사운드 위에서 서글픔과 드넓은 감정을 한꺼번에 포착한다. 「길놀이」의 산뜻한 피리를 위시한 흥겨움에 걸맞는 거문고의 선율이 흥겨움과 그윽함을 한꺼번에 그린다. 거문고 연주자인 박찬윤은 자신의 곡인 「호랑이 장가가는 날」에서 마림바와 퍼커션에 조응하며 농현의 묘미를 살린 거문고 연주를 선보이며 해학의 즐거움을 한껏 담는다. 피아니스트인 신현정은 자신이 지은 「비 묻은 바람」에서, 김주리의 감정이 풍부한 해금과 더불어 연주하는 우수 깊은 피아노 음색을 선보였다. 단순한 악곡 구조로도 입체적이면서 섬세한 사운드를 구축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인데 둘은 이 일을 너끈하게 해낸다. 「도라지」의 서두를 여는 정혜심의 가야금은 그 자체의 연주만으로 정감어린 즐거움을 발산한다. 「아침 풍경」의 정적이면서도 명상적인 아름다움이 흥겨움으로 은은하게 퍼져나가는 대목도 좋지만, 「날으는 밤나무」에서 황근하와 신창렬의 퍼커션을 중심으로 협업하는 후반부의 연주는 기실 이 앨범의 백미다. 세션으로 참가한 박수진, 곽수환, 박치완의 역량도 이들 못지않게 훌륭하다.

이 팀의 리더, 음악 감독, 어쿠스틱 기타 연주자 겸 퍼커셔니스트이자, 나머지 8곡의 작곡자인 신창렬은 국악과 양악의 균형지점을 절묘하게 꿰차는 악곡과 편곡을 선보인다. 「아침 풍경」의 자연스러운 조바꿈은 그의 유연한 악곡이 장점으로 드러난 트랙이다. 「도라지」의 흥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밀고 나가는 우직한 구조는 국악에 대한 이해도를 의심할 수 없게 만든다. 「날으는 밤나무」의 무시무시한 후반부를 위해, 그는 가야금 사운드를 제외한 모든 악기를 잠시 물리는 선택을 과감하게 밀어붙인다. 피아노와 징이 어우러지는 오프닝에 덧대져서 부드럽게 연주되는 어쿠스틱 기타는 「길놀이」의 피리를 듬직하게 뒷받침한다. 「은하수를 보던 날」의 신시사이저와 어쿠스틱 기타가 만들어내는 사운드는 기존 국악 크로스오버 작품들이 미처 말하지 못한 ‘섬세함’을 획득한다. (윈드차임과 벨을 적극 도입한 사운드도 주목할 만 하다.) 이 앨범의 가장 약한 트랙인 「Deja Vu」가 의외의 감칠맛을 최소한으로나마 획득하는 데 성공한 것은 그의 적확한 중용 덕택이었다. 그 중용이 이 앨범에 자칫 얹혀 질 수 있었을 ‘오리엔탈리즘’과 ‘대중 영합적인 성격’을 무마시킨다.

물론, 이 앨범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결과물이 아니다. 슬기둥의 음반들, 황병기의 「미궁」(1984) 을 위시한 작품들, 푸리를 비롯한 원일의 작업이나 가야금 앙상블 사계의 (공교롭게도 ‘이날치’의 장영규가 작곡한)「좁은 보폭으로 걷다」(2004) 같은 작업이 앨범의 전후를 장식한다. 좀 더 시야를 넓히면, 『불림소리』(1992)나 『팔만대장경』(1998) , 『기타산조』(2002) 를 거침없이 쏟아 붓던 김수철의 후반기 작업, 이상은의 「공무도하가」(1995) , 양방언의 ‘동양 음악’ 작업도 포함할 수 있으리라. 그림은 그중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 길을 택했다. 대신 스스로가 (작가주의적인 태도를 지양하면서까지)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숲’을 성실하게 일구는 데 집중하며, 자신들의 앨범이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큰 마당'이 되기를 바랐다. 

이 앨범의 차분한 완성도를 기점으로 ‘국악 크로스오버’ 장르는 단순히 국악을 도입하는 단계를 넘어, 국악에 대한 현대적인 심화로 넘어갔다. 물론 그 음악들도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하다. 민족주의적인 사명감이나 동양인 안의 ‘오리엔탈리즘’에 입각한 작품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자체로도 나름의 예술적인 타당성을 가지고 접근한 음악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뭔가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두 대의 베이스로 『수궁가』(2020) 를 거침없이 주파하는 앨범을 만났다. 거기에 열광하는 대중들의 반응도 충분히 보고 들었다. 나는 그제야 이 앨범이 다시 되새겼다. 생각해보면, 대중들은 국악이 좋아서 ‘범 내려오는 음악’에 동한 것이 아니다. 크로스오버가 신선해서 그 음악에 동한 것도 아니다. 음악이 좋고, 춤이 즐거워서 동(動)했을 뿐이다. 어쩌면 대중들은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열린 자세로 들을 준비가 된 사람들이 아닐까. 그들은 그저 자신들이 놀 수 있을만한 새 공간을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닐까. 모르겠다. 나는 그저 그들이 만든 숲을 다시 소요할 생각이다. '그 숲'의 바람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신선하니까. 


Track List

  • No
    곡명
    작사
    작곡
    편곡
  • 1
    은하수를 보던 날
    -
    신창렬
    -
  • 2
    길놀이
    -
    신창렬
    -
  • 3
    비 묻은 바람
    -
    신현정
    -
  • 4
    아침 풍경
    -
    신창렬
    -
  • 5
    도라지
    -
    신창렬
    -
  • 6
    호랑이 장가가는 날
    -
    박찬윤
    -
  • 7
    Deja Vu
    -
    신창렬
    -
  • 8
    날으는 밤나무
    -
    신창렬
    -

Edi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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