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환] 러블리즈 해체 전 발표한 EP 『Tiger Eyes』(2020) 이후 3년만에 내놓은 첫 정규앨범 『Archive of Emotion』의 타이틀곡. 2022년에 발표했던 디지털 싱글들인 「나와」, 「고백」, 「Pink Moon」으로 러블리즈 시절과 궤가 다른 곡들을 발표했었고, 이러한 흐름이 신보에서 계속 이어나가고 있다. 앨범 전곡의 작사를 했고, 작곡도 노브레인의 황현성(달리), 조(Jaw)와 함께 공동으로 진행하며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출발도 제대로 보여준다. 앞서 공개했던 곡들이 시티팝 무드의 신스팝, 또는 정갈한 팝발라드였다면, 이 곡 「Grabby Girl」에서는 앰비언트한 일렉트로닉-인디 팝으로 부드러움을 강조한 사운드를 전면에 깔았다. 기승전결 및 후렴에서의 클라이맥스 구성이라는 통념을 완벽하게 거부하는 곡 전개가 특이한데, 그 위에서 류수정의 보컬도 부드럽고 섬세한 진성과 가성을 자유롭게 구사한다. 사실 현재의 K-Pop 중심의 메이저 가요 시장에서 대중적으로 밀기에는 절대 쉽지 않은 곡이긴 하다. 하지만, 대중들에게 그만큼 ‘K-Pop 아이돌’ 류수정이 아닌, ‘싱어송라이터 뮤지션’ 류수정으로의 새 출발을 확실히 각인시키는 타이틀곡이라는 점에서 앞으로의 행보를 더 주목하게 한다. ★★★☆

[열심히] 차분하면서도 밀도 있는 비트와 넘실대는 베이스라인 위로 보컬의 표현력을 최대한 어필하는 데에 집중하는 그런 류의 곡입니다. 생각해 보면 「Tiger Eyes」가 좀 이상한 접근이었지, 솔로 뮤지션 류수정의 곡들은 대개 이렇게 보컬의 개성을 강조하는 데에 집중해왔죠. 음색이 종종 표현의 밀도에 밀려 살짝 흩어지는 부분을 제외하면 몽글한 무드도 잘 잡아냈고, 인디 팝에 가깝게 잡은 방향성 또한 보컬과 적절히 어우러집니다. 다만, 이렇듯 부드럽고 유려하게 흐른다는 점이 강점이면서 동시에 단점이 되기도 하는 곡이기도 합니다. 반드시 모든 곡이 날카로운 훅을 지닐 필요는 없지만, 이 곡은 짧은 러닝타임에도 조금은 구성의 역동성을 더 고민했어도 좋지 않았을까 하는 고민이, 언뜻언뜻 중반부터 들기 시작하거든요. (사실 앨범 전체로 듣는다면 어느 정도 상쇄될 이슈이긴 합니다.) ★★★

[이정희]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이 앨범을 듣기에 앞서 러블리즈의 이름을 떠올릴 것이며, 솔로 뮤지션 류수정이 어떤 음악으로 앨범을 채웠을지를 궁금해하며 기대할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기획사의 시스템 안에서 만들어졌던 음악과 싱어송라이터 류수정의 음악은 다를 것이라고 선을 긋고 듣기도 할 것이다. 류수정은 먼저 스스로의 감정을 세밀하게 관찰한 다음, 대중의 시선과 기대까지 담아 솔직하게 표현하는 데 집중했다. 그렇게 그려 낸 「Grabby Girl」은 남들과 다른 20대를 지나온 류수정의 솔직한 감정이자, 각자의 시간들을 보내며 쌓인 여느 20대의 보편적인 이야기이기도 하다.각자 어딘가의 틀 안에서 절제할 수 밖에 없는 욕망의 감정은 지나친 꾸밈을 배제하고 허스키한 류수정의 목소리로 드러나며 힘을 얻는다. 개인의 욕심처럼 내세우기 어려운 부정적인 감정들을 솔직하게 표현한 이 곡은 그래서 더욱 보편적인 공감대를 이루고, 나아가 만든 이와 듣는 이 서로를 향한 응원가로 자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