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註 : 정지용의 시 「호수 1」(1935)에서 제목을 빌려왔다.)

「출근」을 들을 때마다 걱정부터 앞선다. ‘출근기’도 없는 요즘, 쿠퍼스 프리미엄L을 어떻게 하면 싸게 먹을지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이 곡이 제대로 먹히기나 할까. ‘사내 정치’와 ‘저녁이 없는 삶’을 유지하기도 피곤한데, 실연을 생각할 겨를이 있을까. 「출근」은 바로 그런 냉소의 깊이에 반비례하여 도약한다. 가슴에 손을 얹고 대답해보자. 누가 이 훅을 외면하겠는가. 무의식적으로 대번에 자세를 바로잡는, 강력한 힘을 가진 훅을 말이다.

그렇게 우리를 뒤흔들고 지나간 훅은, 수습할 새도 없이 키보드 솔로와 기타 솔로가 여진을 일으킨다. 김광진의 곡은 늘 그랬다. 유치하고, 버성기고, 말도 안 되는 제재를 조심스레 통과하다가 멋들어지게 이륙한다. 다소곳한 인상을 주는 「편지」에서조차 그는 상승하는 음계로 곡을 끝맺으며, 체념(이라는 사랑)을 보다 넓은 의미의 사랑으로 승화시킨다. 가장 이질적인 수록곡인 「She」 또한 마찬가지다. (물론 영원한 그의 음악적 동반자인 박용준의 공도 컸겠지만) 다소 유치할 수도 있는 랩과 점잖은 보컬 멜로디를 사랑의 현실에 입각한 감정의 빈번한 번민으로 승화시킨다. 보다 입체적이고 성숙한 관점으로 사랑의 양상을 포착한 것이다.

앨범은 「약속」을 위해 사랑의 헌신이 행하는 모험을 다룬다. 신화나 전설에 나오는 헌신은 가상이기에 더욱 절실하고, 현실의 헌신에 입각한 사랑은 현실이기에 한없이 솔직하다. 이 앨범 속에서 사랑은 강력한 만큼 나약하다. 「솔베이지의 노래」에서 「출근」으로 갈 수도 있지만, 「유치원에 간 사나이」에서 「글래디에이터」로도 갈 수 있는 게 사랑이라고 역설한다. 「약속」에서 벌어지는 이별은 이와 같은 뒤척임 때문에 더욱 높은 차원의 사랑으로 승화한다. 전작의 「편지」(2000)로 사랑의 성숙한 승화를 보여주었던 김광진은 이 앨범을 통해 보다 넓고 깊고 높은 사랑을 역설한다.

물론 이것만으로 앨범의 훌륭함을 설명할 수 없다. 이 앨범의 가장 큰 장점은 적절한 균형감각을 발휘한 전달 방식을 선택했다는 것에 있다. 밴드의 구성에 키보드를 더한 박용준의 편곡 방식은 경제적이고 합리적이며 또한 적확했다. 자칫 괴리감이 들 수도 있었던 곡들이 균일하고도 담백한 사운드로 한데 묶일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그의 공이다. 이 앨범은 더 클래식의 2집과 더불어 그들이 남긴 또 하나의 걸작으로 남을 것이다.

사랑을 생각하면 사랑이 떠오르지 않는다. 사랑을 생각하지 않을 때면 사랑은 저절로 다가와 우리 옆에 나란히 앉는다. 선택은 자유지만, 우리는 결국 좋은 의미로도 나쁜 의미로도 사랑을 떠날 수 없을 것이다. 사랑만 찾고 살 수는 없다. 그러나 사랑 없이 사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 사실이 지금의 나를 슬프게 한다. 「약속」을 들을 때마다 오래도록 두 눈을 감는 이유다.
 

#김광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