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Review

[안녕, 魔王 #2] 신해철이 지향하는 음악의 모든 것이 형성되다.

무한궤도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
2,466 /
음악 정보
발표시기 1989.06
Volume 1
레이블 한국음반

 

 

신해철의 음악은 크게 무한궤도 시절의 대중적인 록음악과 솔로 활동 당시의 대중 지향의 순수했던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시기, 그리고 강렬한 록음악을 구사하던 넥스트(N.E.X.T) 시절과 테크노와 프로그레시브적 성향의 음악을 진행하던 그 이후의 시기로 나뉜다. 안타깝게도 그 다음 단계를 진행하고자 준비해 나왔던 신해철은 세상을 등졌다. 여러 음악적 모토적인 부분에서 신해철 음악은 무한궤도를 통해 시작되었고, 구심점을 보이며 변화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 엄밀히 무한궤도가 발표한 단 한 장의 앨범에 담겨진 모든 수록곡에는 신해철 음악의 지향점이 고르게 녹아내려 있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무한궤도의 음악 안에는 넥스트와 015B 등 한국 대중음악사의 새로운 계보가 확연하게 존재하고 있다. 

 

 

무한궤도의 등장 배경


신해철이 등장했던 1988년은 실력있는 신인 가수들이 여럿 등장했던 시기였다. 소위 ‘3섭’이라 불렸던 변진섭과 최호섭, 양홍섭을 필두로 푸른하늘과 박학기 등 다양한 색깔을 지닌 가수들이 데뷔를 이뤘다. 더군다나 꾸준하게 유지되던 가요제 출신의 신인들까지 대거 등장하면서 1988년 한국대중가요는 그 어느 해보다 풍성한 기록들을 남길 수 있었다. 당시 양대 가요제라 할 수 있었던 《강변가요제》와 《대학가요제》를 모두 섭렵할 수 있었던 인물이 신해철이라는 사실로부터 우리는 그의 음악에 대한 기억을 시작해야 한다.  


신해철의 데뷔 전후는 부활의 흐름과 비슷한 맥을 지닌다. 신해철은 보성고등학교 재학 시절 친구 이호석과 함께 데뷔 이전의 부활 사무실을 자주 드나들었다. 이후 부활 팬클럽을 이끌던 두 사람은 자진해서 부활의 공연 포스터를 부착하는 등의 열성을 보였다. 신해철의 친구 이호석은 부활의 데뷔 이전에 Loudness에게 ‘지옥으로 보내겠다’는 편지를 발송한 인물로 이후 이 에피소드는 부활 자켓 뒷면에 게재되면서 록 앨범 가운데 최초의 노이즈 마케팅으로 회자되기도 했다. 알려져 있다시피 부활은 검은진주에서 활동하던 김종서를 메인 보컬로 영입해서 1985년 강변가요제에 출전했지만 예선 탈락한 바 있다. 부활의 데뷔 이전과 직후를 바로 곁에서 지켜봤던 신해철에게 있어서 부활과 김태원의 일거수일투족은 교과서와 같았고, 이는 무한궤도의 시작과 과정에 분명하게 묻어났다.


신해철은 부활의 데뷔 이전 경복고등학교와의 연합 스쿨밴드이자, ELP와 Uriah Heep을 주로 카피하던 스쿨밴드 각시탈(고교 스쿨밴드 역사에 연륜이 깊은 단대부고의 각시탈과 다른 밴드임)의 기타리스트로 활동했었다. 대학 입학 이후 신해철은 각시탈의 또 다른 멤버인 김재홍 등과 함께 트윈 키보드라는 독특한 시스템으로 그룹 무한궤도를 결성하게 된다. 드러머 조현찬의 집에서 연습을 주로 행하던 무한궤도는 부활의 오프닝 밴드로 몇 번 무대에 오른 이후 첫 번째 단독공연을 진행하게 된다. 이 무대에서 무한궤도는 ELP와 Uriah Heep, Sky, Procol Harum, Pink Floyd의 카피곡과 다섯 곡의 창작곡을 더해서 공연을 이끌었다.

 

 

새로운 음악의 중심은 우리가 듣는 음악에 있다.


단독 공연의 성공에 고무된 신해철은 정식 앨범 제작에 욕심을 부리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방법을 강구하던 신해철은 1988년 고교시절 밴드 동료가 결성한 그룹 아기천사의 멤버로 《제9회 강변가요제》에 참여하게 된다. 아기천사는 예선 현장에서 특히 인기를 얻어내며 본선을 통과했지만, 아쉽게도 결선 진출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당시 출전했던 곡 「그리움은 기다림의 시작이야」는 1990년 신해철의 솔로 데뷔 앨범의 타이틀곡으로 선정된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의 편곡 이전 곡이었다.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신해철은 가요제에 대한 특성과 거기에 맞는 음악을 새롭게 다듬어가며 다음 단계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같은 해 12월 24일 잠실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제12회 대학가요제》에서 그를 중심으로 재정비된 무한궤도는 대한민국 가요사에 길이 남을 명곡 「그대에게」를 열창하며 대상을 거머쥐게 된다.


대학가요제 출전 이전부터 신해철(보컬, 기타), 양두현(베이스), 김재홍(키보드), 조현문(키보드), 조현찬(드럼), 이렇게 무한궤도의 모든 멤버들은 많은 음악을 듣고 창작에 임하고 있었다. 이는 멤버 전원이 당시 심야 DJ로 각광을 받던 성시완씨의 추종자였다는 사실과 「그대에게」의 작곡 배경에서 잘 나타난다. 무한궤도와 신해철이라는 아이콘이 생성될 수 있었던 가장 큰 화두였던 「그대에게」는 그룹 Asia의 1982년 데뷔 앨범 『Asia』에 수록된 「Only Time Will Tell」을 참조해서 완성시킨 곡이다. 또한 「그대에게」는 발라드와 댄스가 주류를 이루던 당시 대중가요계에 신선한 충격을 전했고, 록음악을 향한 대중들의 연쇄 반응까지 이끌어냈다. 도입부의 키보드 연주부터 듣는 이를 휘어 감아오는 가운데 곡조의 변화가 특히 매력적인 넘버 「그대에게」는 아직도 사랑받고 있는 희대의 명곡임에 분명하다.

 

 

무한궤도의 데뷔와 음악적 파장


이처럼 「그대에게」 단 한 곡으로 대학가의 우상, 가요계의 신성으로 명성을 날리던 무한궤도는 대학가요제 이후 정규 앨범 제작을 시도한다. 마음과 달리 쉽게 다가오지 않던 앨범 제작의 기회는 무한궤도가 대상을 수상하는데 가장 큰 몫을 담당했던 조용필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무한궤도의 안부가 궁금하던 조용필은 그들이 다음 단계에 애를 먹고 있다는 소식에 음반사를 연결시켜줬던 것. 제작 스케줄이 잡히자 신해철은 이미 두 명의 건반주자가 있음에도 구상하고 있는 음악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새로운 키보디스트를 영입하게 된다. 그가 바로 이후 015B를 결성하게 되는 정석원이었다. 무한궤도의 1집 제작은 신해철의 진두지휘 아래 무난하게 진행되었다. 문제는 이미 큰 히트를 기록하고 있던 「그대에게」를 대신할 수 있는 데뷔 앨범의 타이틀이었다. 앞서 밝혔듯이 그룹 부활의 성공적인 단계와 가요제의 생리를 경험하고 연구했던 신해철은 다시 한 번 「그대에게」의 감성을 이을 수 있는 곡을 완성하게 된다. 그 곡이 바로 대서사시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때」였다.


1989년 데뷔 앨범을 발표한 무한궤도의 인기는 대학가요제 이후에도 쉽게 꺼지지 않는 상황이었다. 여기에 「그대에게」와 상반되는 감성을 지닌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때」는 제작 당시부터 이미 큰 히트를 예상할 수 있을 정도로 스탭들의 찬사를 이끌었다. 더해서 한층 안정된 보이스 라인을 과시한 신해철과 멤버들의 조화는 거침없어 보였다. 연일 라디오 방송과 언더그라운드에서의 리퀘스트로 인해 방송 출연이 확정되자, 신해철은 보컬에만 집중하겠다는 생각에 전문 기타리스트 영입을 추진한다. 그렇게 해서 영입된 기타리스트가 바로 장호일이었다.

 

 

무한궤도의 음악


무한궤도의 데뷔 앨범은 멤버 전원의 작사. 작곡이 어우러져 있는 가운데, 넥스트와 015B, 그리고 신해철의 솔로 앨범이 지닌 힘과 감성이 공존하고 있는 앨범이다. 이 앨범은 특히 신해철의 다양한 가창 스타일과 조현문과 정석원의 작곡 실력이 잘 배여 있는 것이 특징이다. 숨가쁘게 살아왔던 신해철 음악의 시작은 무한궤도의 첫 히트곡인 「그대에게」에서 끝의 여백을 보이고 있다. 포기할 수 없는 「그대에게」의 상대를 향한 바람은 무한궤도 1집의 타이틀인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때」에서 신해철 자신에게 되돌아왔다. 마치 그의 유작 앨범인 『Reboot Myself Part.1』의 수록곡 「단 하나의 약속」에서 그가 원하던 "다시는 제발 아프지 말아요"라는 바람이 신해철을 향한 많은 이들의 바람이 되어 돌아 왔듯이.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때」는 음악적인 감성의 히트 외에도 일률적이었던 당시 발라드의 작사에도 상반되는 반향까지 이끌어냈다. 상쾌한 뉴웨이브 스타일의 「여름 이야기」는 드라마 《응답하라 1994》를 통해 다시 한 번 사랑받았던 곡으로 2003년 탤런트 차태현이 발표했던 앨범 『The [Bu:k]』에 「Summer Story」라는 이름으로 무단 사용되면서 저작권 이슈를 일으키기도 했다. 신해철의 솔로 앨범을 암시하는 듯 단아하게 흐르는 「비를 맞은 천사처럼」과 「조금 더 가까이」, 그리고 무한궤도와 넥스트 음악의 방정식이 그려진 「소망은 그 어디에」는 무난한 트랙으로 자리하고 있다. 작법의 진보적 기운이 느껴지는 「슬퍼하는 모든 이를 위해」와 유연한 분위기가 독특한 「거리에 서면」은 당시의 중고등학생들에게 유독 인기를 얻었던 트랙으로 015B의 감성마저 엿보이는 곡이다. 특히 「거리에 서면」은 윤종신의 2집 『Sorrow』에 재즈 스타일로 새롭게 리메이크되어 수록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3부작으로 구성된 「끝을 향하여」는 부활의 기타리스트 김태원이 참여했으며, 신해철 음악의 모든 열정이 고이게 되는 넥스트의 음악적 결이 시작된 넘버라 할 수 있다.

 

 

무한궤도 이후의 궤도


앨범 발매 이후, 신해철과 나머지 멤버들의 진로는 엇갈리기 시작했고, 신해철은 어렵게 그룹 탈퇴를 결정하게 된다. 이후 무한궤도는 정석원을 중심으로 잔여 멤버인 조형곤, 조현찬, 장호일을 중심으로 새로운 그룹 015B로 음악적 맥을 이어나가게 된다. 여기에서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무한궤도와 대영AV가 체결했던 계약서의 내용이다. 당시 매니저였던 대영AV의 유재학 대표는 신해철의 가능성을 이미 감지하고 있었다. 때문에 무한궤도와 5년 전속이라는 계약서에 ‘무한궤도 해체시 신해철은 나머지 계약 기간 동안 대영AV에서 솔로 앨범을 낸다.’는 조항을 부속으로 삽입했던 것. 또래 청년들의 결합체이자, 각자 꿈이 다른 조합인 무한궤도의 앞날까지 내다본 유재학은 무한궤도 카드를 버리고, 신해철과 015B라는 더 큰 이득을 볼 수 있게 된 셈이다. 여러 상황과 배경을 차치하더라도 우리는 신해철이라는 아티스트를 통해서 확장된 음악으로 오랫동안 행복할 수 있었다.

 

 

 

Credit

레코딩 스튜디오 : 서울 스튜디오

무한궤도 are
신해철 : All lead vocals, lead guitars, backing vocals
김재홍 : Synthesizers, Sequencer programming, vocals
조현문 : Synthesizers, Sequencer programming, vocals
정석원 : Piano, Synthesizers, backing vocals
조형곤 : Bass, Synthesizers bass, backing vocals
조현찬 : Drums, Percussion, backing vocals

Produced by 신해철 with 무한궤도
All arrangements by 무한궤도
Engineered, Mixed by 이진영
Photography : FOCUS
Art Director : 김호철
Managements : 유호철
Special Thanks to 남성교회 어린이 성가대, 김복순, 김진희 (chorus), 김태원 (lead guitar:끝을향하여)
Recorded at Seoul Studio, Seoul, Korea, from March to May in 1989

Track List

  • No
    곡명
    작사
    작곡
    편곡
  • 1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때
    신해철
    신해철
    신해철
  • 2
    여름이야기
    신해철
    김재홍
    -
  • 3
    비를 맞은 천사처럼
    신해철
    조현찬
    -
  • 4
    소망은 그 어디에
    조형곤
    조형곤
    조형곤
  • 5
    어둠이 찾아오면
    정석원
    정석원
    정석원
  • 6
    조금 더 가까이
    신해철
    신해철
    신해철
  • 7
    거리에 서면
    신해철
    정석원
    정석원
  • 8
    슬퍼하는 모든 이를 위해
    신해철
    신해철
    신해철
  • 9
    끝을 향하여 - 1. 생명 그 외로운 시작 / 2. 삶의 전쟁터에서 / 3. 끝을 향하여 (inst.)
    -
    조현문
    -
  • 10
    움직임 (inst.)
    -
    조현문
    -

Editor

  • About 고종석 ( 7 Article )
SNS 페이스북 트위터
TOP
Error Message : Query was emp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