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은] 레드벨벳의 멤버, 아이린과 슬기로 이루어진 유닛의 「Monster」(2020) 에서부터 잔혹 동화의 세계관이 이어지는 곡이다. 선율을 강조한 스트링 악기 위주의 사운드가 곡 전반을 장악하는데, 이는 곡에 참여한 유영진의 영향력으로 느껴진다. 흡사 90년대말 2000년대 초반의 H.O.T와 신화, 보아가 내세웠던 마이너한 곡들을 직접 재해석한 감흥을 준다. 현재 걸그룹 시장에서 찾아볼 수 없는 우아하고 다크한 장르이다 보니 분명 새로운 길이긴 하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에 현재성이 있는지, 그리고 슬기의 첫 솔로곡으로서 매력을 전부 살려냈는지 생각하면 아쉽다는 인상을 준다. ★★☆

[이아림] 에스엠의 세계관 '광야'는 아름답기만 한 동화가 아닌 전쟁터에 가깝다. 그 안에서 통통 튀는 발랄함부터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까지 다양한 컨셉을 소화하던 슬기는 이제 홀로 서서 불안을 노래한다. 말끔하게 다듬어진 노래는 무거운 베이스와 가느다란 휘파람을 내세우지만 가장 큰 매력은 이 경계를 탄탄한 목소리로 휘어잡는 슬기의 노련함에 있다. 에스엠 특유의 하이라이트 고음과 힘 있게 긁어내는 보컬은 보아를 비롯한 몇몇 아티스트를 떠올리게 하나, 마디별로 유연하게 완급 조절을 하는 풋풋한 목소리는 독보적이다. 아슬아슬한 긴장감 속 천국행은 거부할 수 없는 제안으로 들린다. 그러나 "사랑 앞에 공존하는 선과 악"을 담았다는 분명한 주제의식에도 불구하고 분노로부터 추진력을 얻는 유영진의 작법만 남았다는 점이 아쉬움을 남긴다. 특히, 28가지 이유를 나열할 필요는 없지만 상징성을 띌 수 있음에도 그저 가수의 나이 외에 별다른 연결고리가 없는 단순함이 매력을 반감시킨다. 그럼에도 다양한 장르의 구성과 첫 작사 참여 등 슬기의 변화를 담았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음반이다. ★★★☆